[박종호 칼럼] 그 비싼 수업료를 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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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논설위원

며칠 전 집에서 TV를 켜니 마침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 TV토론회가 열리고 있었다. 끝까지 귀 쫑긋해 듣고는 부산시민이면서 왜 서울시장을 뽑는 토론회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우선 서울시장 선거이지만 전국 방송을 하니 보게 된 것이다. 서울시장은 선출직 공무원 중 이인자로 국무회의에도 들어간다. 서울시장은 권한과 국민들의 관심이 큰 만큼 걸맞은 책임감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토론회에서 너무 어이없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한 후보가 서울 청년들이 경기도 판교로 빠져나가서 큰일이 났다면서 서울에 일자리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판교는 비수도권 벤처기업들을 마구 빨아들이는 스타트업의 중심지다.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리게 된 것은 서울 때문이다. ‘서울의 확장’을 두고 서울 인구가 빠져나간다고 주장하는 견강부회에 놀랐다. 다른 후보들도 서울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걱정하거나,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며 맞장구를 쳤다. 사실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들도 서울의 부동산 공급 확대 대책에 주력하고 있으니 오십보백보라고 하겠다.

서울시장 보선 전 국민 관심사 불구
재건축 완화 등 부동산 공약만 난무
극심해진 불평등 해소 정책 아쉬워

임기 1년 부산시장 SF급 공약 난센스
힘들게 쟁취한 가덕신공항·메가시티
2030엑스포까지 성공시킬 리더 필요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75명, 서울은 사상 최저인 0.64명에 그쳤다. 젊은이들을 빨아들이는 서울의 출산율이 왜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미국의 동물 행동학자 존 B 칼훈의 쥐 실험 결과가 힌트를 제공한다. 그는 160마리의 쥐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210㎠의 상자를 만들고 쥐 두 마리를 넣었다. 이들은 놀랄 만한 속도로 번식해 315일째에 620마리가 되었다. 그런데 그 뒤부터 개체 수가 줄기 시작했다. 먹이와 공간이 부족해지자 공격성이 늘었다. 600일이 지나자 암컷들은 새끼를 낳지 않았고, 수컷들도 짝짓기에 관심을 잃고 혼자 자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기성세대의 이익보다 청년들에게 신경을 써야 할 때다. 마침 서울의 청년활동가 110여 명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응을 위한 청년활동가 네트워크’를 출범시키고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이번 선거에 재건축 규제 완화 같은 가진 이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말들만 넘쳐난다면서, 코로나19로 더 심각해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펼쳐 달라고 촉구했다. 청년들은 수도권이 가장 많은 전기를 소비하면서 원전과 같은 위험시설은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만 건설하는 현실도 비판했다. 적어도 서울시장 후보쯤 되면 국가균형발전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부산시장 보선에는 253억 3800만 원, 서울 보선에는 570억 9900만 원이 든다. 지자체가 이 비용을 다 부담한다. 시장 사퇴로 인한 시정 공백과 막대한 선거비용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부산시장 보선을 계기로 지역의 위기의식이 높아지면서 부울경이 힘을 합치게 된 점은 다행스럽다. 천신만고 끝에 찾은 외길이 가덕신공항과 메가시티다. 지금도 서울 언론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물어뜯고 있지만 가덕특별법은 26일 국회 본회의 통과가 확실시된다. 되돌아보면 아찔한 순간이 너무 많았다. 대구·경북은 가덕신공항을 왜 그렇게 반대했을까. 대구·경북은 내년 7월 통합지방정부 출범을 목표로 8월에 주민투표를 한다. TK가 행정통합에 가장 적극적인 이유는 인구 500만 명 이상이 되어야만 수도권과 맞서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울경 800만이 가덕신공항과 메가시티로 뭉쳐서 새로운 플랫폼이 되는 게 두려운 것이다. 광주와 전남은 광주공항 이전 문제를 두고 이견을 보이면서 지난해 11월 행정통합 논의를 위한 합의문에 서명하고도 아직 답보 상태다.

이번 부산시장 보선 여야 후보 경선이 나랏일보다 지역 현안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있는 모습은 긍정적이다. 여야에서 각각 배짱이 두둑한 여성 후보가 나오고, 행정 경험이 풍부한 부시장 출신 신인 정치인이 둘이나 등장한 것도 반갑다. 아쉬운 점은 SF급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쏟아지는 허망한 공약들이다. 그다음 부산시장 선거는 2022년 6월 1일에 실시된다. 한·일해저터널, 어반루프, 돔 야구장, 삼성 공장 유치, 실리콘비치, 부산시청사 북항 이전, 국공립대학 통합 등은 일 년 남짓한 시장 임기를 고려하면 신기루와 같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당내 가덕신공항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2030년 이전 개항을 선언했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새 시장은 가덕신공항과 부울경 메가시티의 토대를 잘 닦고, 2030엑스포 유치 준비만 제대로 해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 갈 길이 멀고 험하다. 빨간 말이든 파란 말이든 잘 달릴 말이 필요하다.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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