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소아시아 기행] 그래야 하는가? 힘들게 내린 결정!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문화공간 내서재 대표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 그는 2008년 피아니스트의 경력에서 물러난 후 여기저기 강연과 마스터 클래스를 다니던 중 2019년 체코 프라하에서 ‘나의 삶과 음악’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다. 브렌델은 시와 수필을 쓰는 작가이기도 해서 이 강연에서도 문학적 재치와 유머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다만 청중의 반응이 둔감하다는 것이 옥에 티이긴 했다. 먼저, 그는 ‘음악가의 사적 삶으로부터 예술이 얻어 낼 이득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아놓고는, 그럼에도 본 강연을 자신의 양쪽 가문과 관련된 몇 가지 사항을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하겠노라고 운을 뗀다. 그러기 전에 브렌델은 전두환을 위시한, 너무 수월하고도 태연자약하게 위조 서류를 방불케 하는 자서전을 써 대는 한국의 몰지각한 인간들을 겨냥하기라도 하듯, 자신은 자서전을 펴내기에는 진실을 훨씬 더 좋아하는 인간이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그의 자서전을 기대해 온 많은 사람들의 희망 사항을 우아한 방식으로 일축한다.

양쪽 집안의 역사를 진력을 다해 추적 조사를 해 봤으나 유대인 조상은 한 명도 없는 것 같다는 말로 시작하는 그의 유머는 오늘의 주제 ‘자전거’와 관련된 이야기로 이어진다. 자신의 양가에는 음악가는 물론이고 지식인조차 한 명도 없으나, 유일하게 친할아버지가 음악과 관련된 일화를 하나 갖고 있다는 것인즉, 조부가 운영하던 자전거 스쿨에 당시 비엔나 음악계의 거물로 부상하던 구스타프 말러가 아내 알마와 함께 자전거 타기를 배우러 왔다는 것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자전거는 앞바퀴는 매우 크고 뒷바퀴는 작은 기이한 모양의 자전거로서, 더 기이한 점은 이런 모양의 자전거에 ‘오디너리’(평범한 혹은 보편적인) 자전거라는 명칭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타고 다니는, 앞뒤 바퀴의 지름이 같은 형태의 자전거는 이 오디너리의 몇몇 단점, 특히 안전상의 문제점을 개선하면서 등장한 것으로, 이름부터 ‘안전’(세이프티) 자전거다.

인류 최고 발명품 설문 결과 1위는 자전거
200년 넘게 인간에게 즐거움과 건강 선사
현대 사회 환경·교통 문제 해소할 수단 주목
건설·개발 앞서 깊고 진지한 물음 전제돼야

자전거 얘기가 나온 김에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 혹여 브람스 씨가 알게 되면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시겠지만, 나는 전통적인 음악의 3Bs(바흐·베토벤·브람스)를 새 3Bs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 결정은 어디까지나 나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이고, 또 멋대로 음악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미 눈치를 챈 독자도 계실 텐데, 나의 새 3Bs는 바흐와 베토벤까지는 그대로이고 마지막의 브람스(Brahms)가 바이시클(Bicycle·Bike)로 대체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음악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건 결코 아니다. 다만 바이크에 대한 열정이 처음으로 새롭게 타올라 브람스에 대한 그것을 약간 능가했을 뿐이다. 그렇다 해도 새 열정이 내 왼쪽 쇄골마저 넘보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테다. 이제부터 나의 숙제는 ‘자린이’(자전거+어린이) 수준의 자전거 실력과 저질 체력을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루트를 다녀올 정도의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자전거가 우리 인류에게 가져다주는 산업적, 환경적, 건강상 이익은 우리의 평소 생각을 크게 넘어선다. 영국 BBC가 19세기 이후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놀랍게도 그것은 TV나 인터넷, 트랜지스터 등을 제치고 자전거가 차지했다. 미국의 환경학자 존 라이언 역시 그의 저서 <지구를 살리는 일곱 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에서 다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자전거를 일순위에 올려놓았다. 두 다리로 두 바퀴를 돌리는 이 평범한 물건이 왜 이렇게 특별한 걸까? 그건 이 물건이 아주 간단한 구조와 원리로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류에게 즐거움과 건강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목하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환경·교통·수송·에너지 등 다양한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하는 최적의 기술이나 물건으로 다시 주목받기 때문이다. 교통수단의 측면 하나만 보더라도, 앞으로 건설되는 가덕신공항에서 무수히 뜨고 내릴 비행기가 탄소 배출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면, 자전거는 탄소 배출 ‘제로’를 자랑한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No.16 바 장조 Op.135’의 4악장에는 뜻밖의 표시어가 붙어 있다. ‘힘들게 내린 결정’이라는 표제 뒤로 ‘그래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장중한 속도로 이어진다. 현재 부산에는 가덕신공항 건설을 놓고 무조건 찬성의 기세가 넘쳐난다. 나는 이 쟁점이 베토벤의 경우처럼 힘들게 내리는 결정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 느린 속도로 ‘그래야 하는가?’ 하고 거듭해서 물어봤으면 좋겠다. 나아가 이 숙고의 결과가 비행기길보다는 자전거길이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건강한 의문 제기로 이어진다면 더 좋겠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