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엔 누구나 석탄이 된다” 탄광촌서 건진 삶과 죽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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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제39회 부산연극제] 극단 누리에 ‘검은 입김의 신’

‘검은 입김의 신’ 연습 장면. 극단 누리에 제공

제39회 부산연극제가 15일 막을 올린다. 탄광촌, 잡화점, 밀실 등 서로 다른 공간을 무대로 한 최종 경연작 세 편을 미리 만나봤다.

극단 누리에의 ‘검은 입김의 신’은 부산연극제 관객들을 석탄 냄새와 매캐함이 가득한 탄광촌으로 이끈다. 이 작품은 1980년 4월에 일어난 사북항쟁을 소재로 한다. 가진 것 없는 상진은 아이를 가진 남희와 함께 탄광촌에 들어온다. 탄광촌에서 신혼부부가 마주한 현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검은 하늘 아래서 살아가는 삶.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조금만 참자는 간절한 바람은 사랑하는 이를 위험한 현장으로 내모는 무기가 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짧은 투쟁 이후 “탄광촌을 떠나자”는 상진에게 남희는 “딱 3년만 더 살자”고 말한다. 그리고 막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한다.


‘검은 입김의 신’은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 출신인 고연옥 극작가의 작품이다. ‘마지막엔 누구나 석탄이 된다’와 같이 작품 곳곳에 곱씹어 볼 만한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막장에 갇힌 광부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은 그들이 살아온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신이 되어야겠어. 진짜 신이 되어서 내 자식 잘 클 수 있게 도와야죠.” “신이고 뭐고 그냥 쉬고 싶다. 어릴 때부터 쉬어본 적이 없어.” “세월이 흘러 여기도 밝은 세상이 될까요?”

‘검은 입김의 신’은 메시지가 묵직하다. 연출을 맡은 극단 누리에 강성우 상임연출가는 “투쟁하고 석탄을 캐낸 사람들 때문에 지금의 삶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를 만들어준 사람들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강 연출가는 관객이 최대한 작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탄광에 들어온 것 같은 현장감을 주는 무대와 음향을 사용한다고 전했다.

1980년대 광산촌이 배경이지만 이 작품은 현재 사회 시스템에도 질문을 던진다. 강 연출가는 “비단 광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 사회의 ‘투명 인간’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음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은 입김의 신’=15~16일 오후 7시 30분 부산시민회관 소극장. 051-621-3573.

오금아 기자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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