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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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소설가

오래전 프랜차이즈 매장에 간 날을 기억한다. 아직 드라이브 스루가 없던 시절, 친구와 버스를 타고 낯선 동네에 내려서도 한참을 걸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맛있는 햄버거를 먹기 위해서. 다른 일은 없었다. 그 자체만으로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에는 충분했고 우리는 기꺼이 낯선 동네로의 위험을 감수했다. 새로 생긴 지점이라 매장 바닥은 반짝거렸고 벽면에는 먹음직스러운 햄버거 사진이 잔뜩 걸려있었다. 햄버거를 먹고 있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반가웠다. 그것도 잠시 우리는 고급 레스토랑에 온 것처럼 이내 주눅이 들었다. 주문하고 메뉴를 받는 방법이 낯설어서 실수를 할까 봐 걱정이 됐다. 그때 우리를 구해준 건 주문 도와드릴까요, 천천히 하세요, 라고 묻던 빨간 피케이 셔츠의 그녀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의 웃음이었다. 그게 아주 흔한 고객 응대고 교육 받은 친절함이라 하더라도 내 기억 속의 그곳은 오리지널 버거처럼 공간에 대한 최초의 미식이었던 것 같다.

빛나는 문명의 이기들 속에서
당혹스럽고 주눅 들 때가 많아

앞으로 기계들 점차 많아질 것
계속 낭패감을 맛 봐야 하는가

소외·외면서 누군가를 구하는
친절과 배려 더 많이 깃들어야



얼마 전 신문 기사 하나를 읽었다. 햄버거가 먹고 싶어 집 앞 매장에 가서 키오스크(무인 주문 판매기) 때문에 20분을 헤매다 그냥 집으로 돌아왔고, 딸에게 이 얘기를 하며 ‘엄마는 이제 끝났다’ 라고 말하고 울었다는 내용이었다. 누군가의 인생이 끝났다는 자각이 너무 선명했다. 미지근한 공포가 밀려왔다. 그건 나이 든 사람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지난달 나는 이케아에서 서랍장을 샀다. 크기가 다른 수십 개의 판자들 사이에서 조립 설명서를 펼쳤을 때 느꼈던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 속에 나는 없는 것 같았다. 순간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대학 때 한 선배는 문장 열심히 배워서 시인, 소설가 말고 대기업에 들어가라, 그래서 설명서 좀 제대로 쓰게 해라, 좋은 문장은 그런 데 쓰라고 있는 거다, 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공급자가 아닌 사용자를 배려한 문장. 소외와 외면에서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문장, 어쩌면 끝난 삶을 돌릴 수 있는 그의 문장론에 대해 왜 그때는 가볍게만 생각했을까?

앞으로는 더 많은 기계가 우리의 공간을 차지할 것이다. 단지 나는 그곳에 선배의 친절한 문장론이 좀 스민다면 좋을 것 같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아들을 잃은 부부에게 빵집 주인이 빵을 권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가끔 낯선 사람들의 친절함은 가장 두려운 순간 빛을 발한다. 친절함은 신뢰와 안정, 따뜻함과 기분 좋은 만족감을 준다. 그 안에는 안전하다는 느낌도 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혼자가 아닌 것에 안도하게 된다. 이 감정은 매우 중요하다. 적대와 공격의 반대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이 적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친절은 개발되고 교육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서비스센터 응답기에서 멋있는 우리 아빠가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기술과 편리가 나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미래 기술에 대해 더없이 친절한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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