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예외적 시대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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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부산국제단편영화제(4.21~4.26)는 부산에서 가장 먼저 열리는 영화제로 따스한 봄이 오면 영화의전당에서 개최된다. 작년 우여곡절 끝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던 영화제가 올해는 다시 극장으로 돌아왔다. 개막식은 녹화영상으로 대체했고 폐막식은 필수인원만 참석해서 영화제의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었지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개·폐막식을 볼 수 있게 만든 영화제의 세심함으로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었다.

21~26일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예외상태’ 주제 무사히 마무리

개막작 3편 인간·사회 단면 포착
한국경쟁 신인 감독 작품도 주목
팬데믹 시대 영화로 소통 의미 커


물론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으로 관객들이 극장에 오는 것을 꺼려하고, 좌석 띄어 앉기로 관객 점유율이 낮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관객들의 열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영화제가 진행되는 주말에는 스탭들도 예상치 못할 만큼 많은 관객들이 찾아왔으며, 영화 이야기로 적당히 소란스러웠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거창하고 화려한 축제는 아니었지만 코로나 시대 이렇게 훌륭하게 영화제를 치르기도 어려울 것이다.

영화제의 주제는 ‘예외상태’(A State of Exception)였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일상이 무너졌을 때 나타나는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편영화에 주목하며 주제를 정했다고 하는데, 출품된 영화들 또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에 주목한 영화들이 다수였다.

먼저 개막작으로 ‘로스트 온 어라이벌’ ‘오페라’ ‘온택트’ 3편이 선정됐다. ‘로스트 온 어라이벌’은 네덜란드 영화로 은퇴 이후 삶을 보내기 위해 카리브해의 작은 섬으로 향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남성은 노년의 삶을 편안하게 보낼 줄 았았지만 치매로 인해 점점 기억을 잃어가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한다. 애니메이션 ‘오페라’는 독재정치 시스템을 피라미드 기계로 표현한 작품으로 놀라운 상상력이 돋보인다. ‘온택트’는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 제작·지원한 작품으로 언어를 상실한 한 남자의 위기를 그린 영화다.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시대, 우리는 상대의 표정을 알 수 없으며, 말(대화)을 잃어가고 있다. 즉 말을 잃은 남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비유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한국경쟁 부문에 출품한 신인 감독들의 작품들 또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영화들로 주목할 만하다. 트랜스젠더 신미가 병무청으로부터 병역판정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일어나는 일을 그린 ‘신의 딸은 춤을 춘다’는 춤과 음악이 곁들여져 밝고 유쾌하지만 여전히 편견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영화의 장면을 설명하는 나레이션을 쓰는 ‘우리가 꽃들이라면’은 친구의 기억을 붙잡아주기 위해 영화를 기록하는 따듯한 영화다.

한국경쟁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조지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성폭행을 당한 딸이 자살을 하고 이후 남은 부모의 삶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사건 자체에 초점을 가하기보다는 유가족의 일상을 통해 피해의 고통이 지워질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딸에게 수강신청을 부탁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가 귀찮은 딸의 모습을 담고 있는 ‘수강신청’은 마치 나의 이야기인 듯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현실적이다.

독특한 관점의 단편도 만날 수 있었다.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혈연’은 좀비가 되어버린 아빠를 상대로 차 안에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 앞에 낯선 인물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이 영화는 재난 상황에서도 생리를 하고, 친구와 게임을 하는 등의 일상성을 담아내고 있는데, 기존의 좀비물과는 달라서 흥미롭다. 예외상태에서 열린 이번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을 ‘영화’로 전달한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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