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음식물 재사용의 '흑역사'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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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돼지국밥집에서 반찬을 재사용하는 모습. 부산일보DB 부산의 한 돼지국밥집에서 반찬을 재사용하는 모습. 부산일보DB

돼지국밥과 부산어묵은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부산에 오면 다들 꼭 먹으려 한다는 이야기다. 2019년 <부산일보>는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도록 지역의 돼지국밥 대표 식당 30곳을 선정해 '부산돼지국밥 로드' 지도까지 제작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돼지국밥과 부산어묵을 파는 식당들이 먹던 음식물을 재사용하다 잇따라 적발되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다. 물론 부산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지만 지역 이미지에도 먹칠이 아닐 수 없다. 음식물 재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한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왜 아직도 이런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일까. 최근 일어난 주요 사건들 위주로 살펴보면서, 음식물 재사용 근절 대책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다.


돼지국밥·부산어묵 등 잇단 적발로 사회적 물의

코로나 시대엔 바꾸기 힘든 전통도 달라져야


■믿었던 노포, 너마저!

지난달 7일 부산 동구 한 돼지국밥 식당에서 깍두기를 재활용하던 장면이 유튜브를 통해 생방송으로 노출되면서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결국 부산 동구청은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이 식당에 대해 영업정지 15일 행정처분과 함께 형사고발 했다. 중구의 한 식당은 지난 18일 손님이 먹던 어묵탕 국물을 육수통에 부은 뒤 다시 떠서 가져왔다가 적발되어 아직까지 영업정지 중이다. 특히 이곳은 전통 있는 노포에다 안심식당이었다는 점에서 배신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덜어 먹기 가능한 도구 제공', '위생적 수저 관리', '종사자 마스크 착용'을 준수한다고 지자체가 인증한 식당에서 국물 재사용이라니…. 그 뒤에도 비록 증거가 불충분해 기사화하지는 못했지만 부산의 유명 돼지국밥집에서 고기를 재사용한다는 내용의 제보가 본보로 들어오기도 했다.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면 상호가 비슷한 업체의 피해는 물론이고 향토음식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부산돼지국밥 로드. 부산일보DB 부산돼지국밥 로드. 부산일보DB

음식물을 재사용한다는 소문이 나면 재기가 쉽지 않다. 지난달 중순 생선 곤이를 재사용해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던 경남 창원 진해구의 한 동태탕 식당이 결국 폐업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지난 28일 동구에 있는 문제의 돼지국밥 식당을 찾았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붙이고 최근 영업을 재개했다는 소식을 들어서였다. 점심시간인데도 한 테이블만 손님이 식사 중이라 썰렁한 느낌이었다. 주문하자 국밥과 덜어 먹을 빈 반찬 그릇을 가져다주었다. 식탁 위에 놓인 김치와 깍두기, 쌈장, 새우젓은 직접 덜어 먹도록 했다.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나가자 즉석에서 남은 반찬을 모두 한데 모아서 버리는 장면도 관찰되었다. 이번 사건으로 달라진 모습이었다. 단골인 듯한 손님이 들어오면서 "장사해요?"라고 묻자, 사장님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했다. 이 식당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잔반 재사용 음식점 업주를 처벌하는 개정 식품위생법은 2009년 7월 시행됐다. 1차 적발 시에는 영업정지 15일 조치를 받는 데 그치지만, 1년 이내에 다시 적발되면 영업정지 2개월, 3차 때는 영업정지 3개월, 4차는 영업허가 취소 또는 음식점 폐쇄 처분을 받게 된다. 이와 함께 고의성이 클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처분도 함께 받게 된다. 개정 식품위생법이 시행되고 1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단속과 계도를 병행하고 있지만 음식물 재사용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2018년에는 유명 해산물 뷔페 전문점 '토다이'가 남은 음식물을 재사용한 사건이 터졌다. 당시 SBS '8시 뉴스'는 토다이 경기도 평촌점에서 초밥이나 회로 나온 것을 김밥으로 만들고, 대게를 다시 얼렸다가 녹여서 내놓는다고 보도했다. 토다이는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위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음식물 재사용 논란이 불거졌던 평촌점은 결국 폐점하고 말았다. 부산을 비롯해 적극적인 지방 공략에 나섰던 토다이는 이미지 실추로 인해 지방 점포는 모두 폐점하고 수도권에서도 몸집을 크게 줄여 운영하고 있다. 한편 부산시 특별사법경찰과는 이번 '돼지국밥집 깍두기 재사용 사건'을 계기로 총 2520곳에 대해 중점적으로 단속을 펼쳐 남은 음식 재사용 일반음식점 14곳을 적발했다. 적발된 업소 외에는 위생적이고 안전한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음식물 재사용이 근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토다이'는 이미지 실추로 지방점포를 모두 폐점했다. 과거 부산에서 영업 중인 토다이의 모습. 부산일보DB '토다이'는 이미지 실추로 지방점포를 모두 폐점했다. 과거 부산에서 영업 중인 토다이의 모습. 부산일보DB

■주문 식단·위생 식단·식파라치…

1983년 7월 1일 '주문 식단' 제도가 전면 도입되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낭비 없는 식단, 위생적인 음식, 친절한 음식점'을 구호로 내걸고 시범 운영된 뒤 전국의 한식당에 실시한 것이다. 고추장·된장·간장 이외의 반찬은 주문에 따라 값을 더 내야 했다. 좋은 취지였지만 손님들의 이해 부족과 업주들의 기피로 오래 가지 못했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는 '위생 식단제'가 운영됐다. 앞 접시에 국을 따로 덜어 주는 등 위생적인 식단을 확산한다는 운동이었다. 강제성이 없는 권장 사항으로 역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부산시와 일선 지자체의 음식물 재사용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은 <부산일보> 기사에도 수시로 나온다. 2010년 1월 12일 자에는 '부산시, 잔반 재사용 근절 두 팔 걷었다'라는 제목하에 "부산시는 행정처분, 사법처리, 실명 공개와 함께 신고하는 소비자에 대해서는 포상금 5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대책이 나온다. 같은 해 8월 14일 자에는 해운대구가 부산지역에서 유일하게 지역 내 음식점을 대상으로 '주방화상공개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그 밖에도 일선 구청에서는 남은 음식 재사용 방지를 위한 포장 용기까지 제작해서 음식점에 지원하는 등 별별 노력을 다 기울였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주방화상공개시스템 CCTV 모니터를 손님들이 보고 있다. 부산일보 DB 주방화상공개시스템 CCTV 모니터를 손님들이 보고 있다. 부산일보 DB

■ 바꾸기 쉽지 않은 음식 공동체 문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기자의 본가에서는 부모님 두 분만 산다. 어쩌다 보니 팔순이 넘은 아버지가 요리와 설거지를 전담한다. 먹던 국이 남으면 아버지가 국통에 다시 붓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위생상 그렇게 하지 마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고쳐지지가 않는다. 아버지의 생각은 확고했다. 첫째, 식구들이 깨끗하게 먹은 음식인데 뭐 어떠냐였다. 둘째, 끓이면 괜찮다는 것이다. 식당들의 음식물 재사용도 이 연속선상에 있는지도 모른다.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최원준 씨는 "우리는 함께 먹을 것을 놓아두고 먹는 공동체 음식 문화가 이어져 오고 있어서 일단 푸짐해야 한다. 작게 주면 욕을 하고, 넉넉하게 주면 다 안 먹는다. 깨끗한 것을 버리려면 아까워서 많은 업주들이 갈등을 한다. 근본적으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 씨는 또 "우리의 음식문화가 공정성이라는 도마 위에 올라 있다"라고 덧붙였다.

사실 주문 식단제처럼 김치나 깍두기 같은 반찬을 돈을 내고 사 먹게 했다면 음식물 재사용은 사라졌을 것이다. 음식 평론가 이용재 씨는 <한식의 품격>에서 "한식 손맛의 대명사인 김치는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고 발효로 맛을 확립하는 어려운 식품이므로 유료화되어야 마땅하다"라고 일갈했다. 리필 반찬에 돈을 받는 식당은 대한민국엔 없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들이는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 치르기를 일정 부분 거부해 왔기에 이런 변고를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19 장기화로 음식점 휴·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코로나19 장기화로 음식점 휴·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코로나 시대, 전통도 달라져야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침방울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퍼진다. FDA(미국 식품의약국)는 개방된 뷔페나 샐러드바에서의 식품 섭취도 중단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밝혔다. 바이러스의 표면 접촉을 통한 감염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리도구나 그릇까지 꼼꼼하게 세척해야 한다. 비말 차단 칸막이가 설치된 음식점에 들어갈 때도 체온을 재고, QR코드를 찍거나 출입명부를 작성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90도 열을 가해도 죽기는커녕 모양도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남의 침이 들어간 음식물 재사용은 감염병 확산 방지에 반하는 행위다.

과거에는 음식물 재활용이 의심되더라도 동영상이나 사진 같은 증거물을 확보하기 어려워 단속이 힘들었다.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서 SNS나 유튜브에 올리는 게 생활화되어 있다. CCTV는 지금도 돌아간다. 음식물 재활용을 하다 찍힌 식당들의 사례를 보면 십중팔구 폐업으로 이어졌다. 전통이나 문화도 고정된 개념이나 상태가 아니다. 코로나 시대, 우리의 음식 공동체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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