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고픈 바람 이루어지게 한 숲에서 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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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울진 여행

숨쉬기 힘든 날이 있다. 갑자기 걷는 법을 잊어버리듯 호흡법이 기억나지 않고 도무지 깊은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는 풍경을 바꿔보는 게 도움이 된다. 시야도 가슴도 탁 트이는 곳을 찾아서 경북 영덕과 울진을 다녀왔다.


풍력발전기 24기 돌아가는 생태문화체험공원
‘인생사진’ 명소로 뜬 400m 메타세쿼이아 숲길
8km나 이어지는 너른 바다, 고래불해수욕장
길고 높기로 손꼽히는 울진 등기산스카이워크
시야도 가슴도 탁 트이는 곳에서 큰 숨 내쉴 만


■바람멍 숲멍 바다멍

포항에서 7번 국도 해안도로로 접어들면 멀지 않아 영덕이다. 영덕읍 창포리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거대한 바람개비 모양 발전기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2005년 국내 최초의 상업용 풍력발전단지로 조성된 영덕풍력발전단지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흰색 발전기 24기가 바람을 받고 돌아가는 모습은 엽서 사진처럼 이국적이다. 발전기는 높이 80m 기둥 꼭대기에서 한쪽 길이만 40m가 넘는 날개(블레이드) 세 개가 돌아가는 구조다. 촉각뿐 아니라 시청각으로 공감각되는 바람은 자꾸 떠오르는 잡생각들도 쓸어간다.

영덕군은 1997년 큰 산불로 폐허가 된 이 곳에 풍력발전단지와 함께 전망대와 산책로, 조각공원과 목공예체험장, 생태원 등을 갖춘 생태문화체험공원을 조성했다. 덕분에 종일 머물러도 좋을 만큼 거닐 곳도 볼거리도 많다. 한국전쟁 당시부터 활약한 공군 수송기와 전투기 등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항공기 전시장과 신재생에너지 전시관, 정크앤트릭아트 전시관 등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곳이다.

영해면 벌영리의 메타세쿼이아 숲은 몇 년 전만 해도 아는 사람들만 알음알음 찾던 곳이었다. 지금은 ‘인생샷’ 명소로 꽤 유명해졌다. 개인이 2003년부터 마을 선산에 심기 시작한 나무가 빽빽한 숲을 이뤘다. 하늘 높이 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400m 남짓한데 주변으로 편백과 측백나무 길도 이어져 전체 숲은 입구에서 짐작한 것보다도 깊다. 신선한 숲의 공기 속을 천천히 걷다보면 머리 속도 서서히 비워진다.

동해안을 가까이에서 보려면 고래불해수욕장이다. 병곡면 방면 입구에서 해변으로 들어서면 방파제와 푸른 고래 모양 전망대를 왼편 끝에 두고 오른쪽으로 해수욕장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진다.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진 해변은 길이가 8km, 폭은 30~100m나 된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이 산 위에서 이 바다에 고래가 뛰노는 걸 보고 붙인 이름이라는데, 과연 고래한테 어울릴 만한 너른 바다다. 명사 20리라는 별명에 걸맞게 모래는 밀가루처럼 곱고 깨끗하다. 키높은 솔숲이 병풍처럼 두텁게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도 절경이다.

입구의 작은 공원에는 ‘멍’이라는 글자의 ㅁ 모양 프레임 안에서 남자와 반려견이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 조각 포토존이 있다. 영덕군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최근 조성한 작품 ‘고래불-멍 때리는 전망대’다. 거기 남자와 반려견 사이에 앉아 멍하니 해변의 끝을 가늠해 보았다. 여름에 솔숲 속 5만 3000평 규모라는 고래불국민야영장 텐트 자리를 구할 수 있다면 해질 때까지 ‘멍을 때려도’ 좋겠다.



■바다 밖은 하늘이니

고래불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울진이 시작되는 후포항이다. 후포여객선터미널 안쪽으로 돌로 된 절벽 언덕이 동해를 바라보고 솟아 있다. 해발 64m 등기산이다. 1968년부터 후포등대가 있던 이 곳에 2018년 등기산스카이워크가 조성됐다.

지금은 스카이워크 쪽 입구를 막아놓아 먼저 등기산공원을 통해야 한다. 가파른 나무계단 위 언덕의 공원에는 신석기 유물전시관과 스코틀랜드 벨록 등 세계 유명 등대 4곳의 모형, 최근 조성된 공공미술 조각 작품들이 곳곳에 있다. 여기에서 출렁다리를 건너가면 스카이워크다.

등기산스카이워크는 길이 135m, 높이 20m로 전국의 수많은 스카이워크 중에서도 길고 높기로 손에 꼽는다. 절반 채 안 돼 목재덱 구간이 끝나고 덧신을 갈아신고 짧은 철판 구간을 지나면 강화유리 구간이 시작된다. 스카이워크 중간 지점에서 바다 위로 솟은 일명 ‘후포갓바위’로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을 보려면 강화유리를 밟고 난간으로 가야 하는데, 이 지점부터 담력이 요구된다.

여기에서 스카이워크 끝 인어 조형물까지 57m 구간은 쭉 강화유리다. 맑은 바다와 흰 구름이 아래위로 비치는 투명한 유리 위를 걸어가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풍경은 약간의 스릴을 견딜 가치가 있다. 되돌아오는 길에는 후포갓바위에 소원 하나를 빌 여유도 생긴다.

마지막 여정은 관동팔경 중에 제일간다는 망양정이다. 지난해 개통한 왕피천케이블카를 타고 가면 언덕 꼭대기 망양정에 쉽게 닿는다. 고려 때부터 여러번 위치가 바뀌어도 숱한 시와 그림을 탄생시킨 넓고 푸른 바다는 변함이 없다. ‘하늘의 끝을 끝내 보지 못하여 망양정에 올랐더니,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가.’ 정철(‘관동별곡’)처럼 하늘 밖을 상상하면서 ‘5월 장천(아득한 하늘)의 백설(물보라)’을 따라 큰 숨을 쉬어보았다.

글·사진=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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