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집는 모양=남혐?…도 넘은 몰아가기에 기업·기관 '속앓이'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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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요구 왜 받아주냐" 여성계 비판도

손가락. 이미지투데이 손가락. 이미지투데이

남초(男超) 커뮤니티발 '남성혐오' 논란이 사회 각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이들의 주장이 '억지논란'이라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앞서 2일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편의점 GS25의 이벤트 홍보 포스터에 남성혐오 그림이 있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과거 커뮤니티 사이트 '메갈리아'에서 한국남성의 성기가 작다는 것을 비하하며 엄지와 검지를 모으는 손동작을 로고로 사용했는데, 이와 유사한 손가락 이미지가 있었다는 이유다.

논란 끝에 조윤성 GS25 사장이 나서서 사과하자 '숨은 메갈 찾기'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일부 남성 누리꾼들은 다른 기업이나 기관의 홍보물에서도 유사한 손동작 모양을 일일이 찾아내 '남성혐오' 이미지라는 주장을 연일 제기하고 있다.


남성혐오 논란이 일었던 GS25 홍보물. GS25 공식 SNS 캡처 남성혐오 논란이 일었던 GS25 홍보물. GS25 공식 SNS 캡처

'메갈리아' 사이트 로고 '메갈리아' 사이트 로고

그러나 엄지와 검지를 모으는 손동작은 매우 흔하게 사용돼왔다. CU와 이마트24, 미니스톱 등 다른 편의점들 역시 과거 홍보물에서 제품을 집는 모습을 연출할 때 유사한 손동작을 사용한 전력이 있다.

남혐 논란은 치킨업계로도 번졌다. 교촌치킨은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 중 치킨을 엄지와 검지로 집는 홍보물이 상당수 확인됐다는 이유로 남성 누리꾼들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에 교촌치킨 관계자는 "단순히 치킨을 들고 있는 그림으로 어떠한 의도도 없다"면서도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겠다며 공식 홍보물에서 관련 이미지를 삭제했다.

BBQ 역시 사이드 메뉴인 '소떡'의 소시지를 집는 그림이 '메갈' 손동작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자 7일 공식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사과했다. BBQ는 "과거 제작된 홍보 이미지가 특정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문제가 제기됐다"며 "이에 임직원 모두 논란의 여지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부분에 반성하며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교촌치킨 공식 SNS 캡처 교촌치킨 공식 SNS 캡처

패션 쇼핑몰 무신사도 최근 현대카드와 진행한 '물물교환' 이벤트 포스터에 담긴 손 모양으로 같은 논란에 휘말렸다. 이에 무신사 측은 "남성 혐오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남성 이용자들은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서 항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도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기업이 과거 사용했거나 현재 사용하고 있는 손가락 이미지를 공유하며 '남성혐오' 낙인찍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러한 논란이 지속되자 업계 관계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홍보물에 남성 또는 여성 혐오 관련된 의미를 담는 사례는 거의 없다"며 "논란이 생길 만한 홍보물이 아닌데도 너무 질타하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어 걱정된다. 물건을 집는 손가락 모양 등은 홍보물에 흔히 쓰이는 이미지인데 어떻게 해야 논란 없이 표현할 수 있을지 현업 부서에서는 다소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도 한겨레 인터뷰에서 "GS25의 사과문을 봐도 불합리하거나 면피성으로 보이지 않는데, '과도한 몰아세우기'처럼 보인다"면서 "물론 기업은 이런 논란 자체에 휘말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마케팅 기획과 활동에서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식품업체 관계자도 "작은 초콜릿이나 껌, 사탕 등을 표현할 때에는 당연히 손가락으로 집는 게 많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GS25 이미지를 아무리 봐도 왜 남성 비하인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밝혔다.

직장인 익명소통 어플 '블라인드'에는 자신을 이마트 바이어라고 소개하면서 "GS사태 때문에 혹시 몰라 지금 담당한 자체 기획(PL) 상품 디자인을 하나하나 체크 중이다. 숨은 메갈 찾기"라고 분노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무신사 공식 SNS 캡처 무신사 공식 SNS 캡처

일각에서는 GS25의 공개 사과가 자충수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누리꾼의 과도한 억측에 사과까지 하면서 끊임없이 피드백을 해야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GS리테일의 기념주화 홍보물에도 유사한 손가락 모양이 숨겨져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논란이 지속되자 GS리테일은 "주화 공급업체로부터 받은 원본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했다"며 "원본 이미지를 보면 관련 문양과 연결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악의적으로 각종 효과를 줘 부각을 시키고 손 모양 이미지를 넣은 것"이라며 "허위사실 유포로 회사 및 경영주에게 피해를 준 유포자에 대해 수사기관에 의뢰해 적법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여성계를 중심으로도 이러한 논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당초 '메갈리아' 사이트가 이미 폐쇄된 가운데 로고를 몰래 사용할 이유가 없다며 '남혐' 논란이 우습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여초 커뮤니티와 SNS에는 해외 유명인사와 국내 연예인들이 엄지와 검지를 모은 사진을 올리며 "이것도 메갈이냐"고 반문하는 글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GS25의 홍보물을 남성혐오로 규정하며 공개 비난했으나, 그 역시 과거 SNS에 올린 사진에서 유사한 손 모양을 취한 모습들이 확인됐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SNS 캡처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SNS 캡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GS25의 포스터를 남성혐오라고 지적한 이 전 최고위원의 페이스북 글에 "소추들의 집단 히스테리가 초래한 사회적 비용"이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기업과 공공기관이 황당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 누리꾼은 GS25가 공개사과한 것을 두고 "남성들의 억지스러운 여성혐오를 구조적으로 수용하는 사회"라고 비판해 공감을 얻었다. 여초 커뮤니티 등에는 '남성혐오 논란'에 사과하거나 손가락 이미지를 수정한 기업을 모은 목록이 확산되며 불매를 선언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실제로 공공기관들은 "남성혐오와 관련이 없다"면서도 지적을 받은 게시물이나 홍보물을 수정 및 삭제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중순께 서울경찰청과 경기북부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 등이 인터넷에 배포한 개정 도로교통법에 관한 홍보자료는 손가락을 모으는 이미지 때문에 남성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경찰청은 입장문을 내고 "손 모양은 카드뉴스 페이지를 넘기는 부분 등을 강조 표시하기 위해 삽입된 것으로 특정 단체와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확인했다"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미지를 수정했다.


서울경찰청 SNS 캡처 서울경찰청 SNS 캡처

이 홍보물을 제작한 민간 홍보업체 A 사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해당 카드뉴스 디자인을 한 사람은 40대 남성"이라며 "(해당 디자이너가) 내부적으로 손가락 모양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한 작업이다. 정말 그런 의도가 아닌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전시청의 대처도 유사했다. 지난 5일 금강일보 보도에 따르면 대전지역 스쿨존에 설치된 로고라이트(LED 조명으로 그림이나 그림을 바닥에 투사하는 장치)도 남성혐오라는 비판을 받았다. 해당 로고라이트는 '어린이 보호구역은 금연구역'이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금연구역'이라는 글자에 손가락을 모으는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

금강일보는 "극단적인 여성우월주의를 상징하는 손 모양이 포함되면서 정작 중요한 메시지는 정중앙이 아닌 상단으로 밀렸다. 손 모양이 오히려 정중에 위치했다"며 이 로고라이트가 남성혐오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전시 관계자는 "대전 내 로고라이트의 내용은 외주를 통해 제작된 것으로 확인했고 시안은 우선 4일 모두 철거키로 했다"고 밝혔다.


'금강일보' 홈페이지 캡처 '금강일보' 홈페이지 캡처

애초 '남성혐오' 논란은 성립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특정한 모독 발언이 '혐오' 발언이 되려면 '구조적 조건'이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내가 밤길을 걷는데 어느 여성이 일정한 간격으로 뒤를 따라온다고 내가 공포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반면 같은 조건이라도 여성의 뒤를 남성이 일정한 간격으로 따라가면 여성은 공포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박우성 영화평론가는 7일 SNS에 올린 글에서 "여성혐오는 있고 남성혐오는 없다"며 "강자가 생산한 편향적 절차에 대한 약자의 정당한 분노는 혐오가 아니라 저항이다. 약자의 분노를 제압하기 위한 강자의 폭력적 포식행위는 저항이 아니라 혐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남자들이 들먹이는 '남성혐오' 현상은 남성들에게 딱히 실질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남성의 기분을 자극하는 정도다"며 "반대로 '여성혐오'는 여성의 삶을 실질적 위협한다. 어떤 경우 그것은 생존의 위협이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박 평론가는 "가령 '한남충'이라는 표현이나 최근 이슈가 된 GS포스터 도상이 남성에게 가하는 실질적인 위협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반면에 여기저기에 유통되는 외모품평 언사들은 여성의 생활 반경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여성을 시시때때로 압박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성혐오는 고작 남성의 '기분'을 자극하지만 여성혐오는 여성의 '생존'을 뒤흔드는 것"이라며 "이 둘은 결코 동일선상의 이슈일 수 없다. 마치 동일한 것처럼 취급하는 태도야말로 백래시의 뿌리"라고 일갈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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