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야당 패싱’ 장관급 33명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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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제도는 죄가 없다, 사람이 문제일 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양승동 KBS 사장, 이석태 헌법재판관, 이은애 헌법재판관, 유은혜 교육부 장관, 조명래 환경부 장관,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연철 통일부 장관, 문형배 헌법재판관, 이미선 헌법재판관, 윤석열 검찰총장,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조국 법무부 장관,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은성수 금융위원장,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박범계 법무부 장관, 정의용 외교부 장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순영 중앙선거관리위원,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김오수 검찰총장.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권이 4년 동안 야당 동의 없이 임명을 밀어붙인 장관급 인사 33명의 명단이다.

청와대 인재 발굴 난맥상
여당 단독 보고서 채택
현 정부 들어 35.8% 달해
박근혜 정부의 3배나
밀어붙이기식 인사 강행
국회 청문회 무용지물화
시행 취지도 살리지 못 해
‘자질 검증 후퇴’ 안 될 말
대통령 인사권 견제 위한
확실한 제도 운용 요구돼
도덕·청렴성은 필수 덕목



■야당 동의 없이 안하무인격 임명

문재인 정부가 지난달 31일 임명한 김오수 검찰총장을 포함해 지금까지 국회에 제출한 장관급 인사청문요청안은 모두 95건. 이 가운데 무려 35.8%인 34건은 후보자 자질 논란과 야당 반대로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거나 여당 단독으로 보고서가 채택됐다. 이 비율은 이명박(23.0%), 박근혜(14.9%), 김대중(12.5%), 노무현 정부(6.2%) 시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여야 합의도 없이 해당 인사 33명을 임명했다. ‘야당 패싱(passing)’이다. 이명박 정부 17명, 박근혜 정부 10명에 비해 2~3배 많은 규모다. 야권에서 오만과 독선뿐인 정권이라고 맹비난하는 이유다.

이번 정부 들어 유독 심하게 국회 인사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고위 공직자 임명 강행을 되풀이한다. 청문회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인사 기준을 번복하고 완화한 게 주된 원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정권의 인사를 비판하며 인사 배제 5대 원칙을 내걸었다. 위장 전입, 논문 표절, 탈세,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다. 하지만 집권 후 고위 공직 후보자들에게 각종 의혹이 쏟아지자 2017년 11월 음주운전과 성범죄를 추가해 7대 기준을 새로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내용상으로는 법적 처벌을 받은 경우에 한해 인사에서 배제하도록 해 의혹이나 흠결이 있는 후보자를 잇달아 지명하는 등 더 느슨해졌다.



■청문회 목적은 인사권 남용 견제

청와대의 밀어붙이기식 고위직 임명과 달리 국회 인사청문제도는 제왕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견제해 인사권 행사를 신중하게 하도록 만들기 위한 장치로 도입됐다. 2000년부터 인사청문회법을 근거로 시행 중이다.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훌륭한 인재를 발탁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동안 인사청문회의 과도한 후보자 흠집 내기와 수준 이하의 논쟁, 여야 간 정쟁 유발 같은 문제점이 불거져 무용론이 제기된 적도 많다.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시행착오나 성장통이라 할 수 있다. 고위 공직자 후보의 자질과 업무 능력을 검증하는 순기능 때문에 청문회 대상이 국무위원으로 확대되는 등 제도는 되레 강화됐다.

이런 까닭에 여야가 함께 인사청문회 무용론을 펼치기도 한다. 정권 교체로 입장이 바뀌었을 때다. 후보자에게 결격 사유가 있어도 대통령이 무시하고 임명하면 그만인데, 청문회를 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야당의 주장. 여당은 “후보자 능력과 정책을 검증해야 할 청문회가 도덕성 검증을 핑계로 망신 주기와 신상 털기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여야가 다시 바뀌어 공격과 수비가 교체되면 뻔뻔하게 상대 당에서 했던 말을 반복하기 일쑤다. 당리당략에 혈안이 된 정치권이 제도와 국민을 우롱하는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여당이 제도를 손질하려는 이유

민주당이 최근 인사청문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후보자의 업무 수행 능력에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할 계획이란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인사청문회를 정면 비판한 데 따른 움직임이다. 문 대통령은 청문회가 정책 능력은 제쳐 둔 채 도덕성을 따지고 사생활을 들추며 무안 주기식으로 변질돼 좋은 인재를 발탁할 수 없다고 했다.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도덕성 등 자질 검증에 치중하느라 업무 역량 검증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는 청문회 도입 취지에 맞게 후보자를 발탁하지 못한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에 책임이 있다. 그런데 국회와 야당 탓으로 돌리는 ‘내로남불’은 너무 아쉽다.

청와대 인사수석과 민정수석의 인재 발굴과 검증 능력이 부실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야당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무분별하다 싶을 정도로 장관직 임명을 강행해 온 이번 정부에서 지명 철회와 자진 사퇴로 낙마한 장관급 후보자만 7명이다. 청와대 인사 검증이 실패한 결과다. 전 국민 포용에 인색한 데다 협치를 모르는 여권이 보유한 인력 풀이 폐쇄적이고 협소한 점도 적임자를 구하기 힘든 이유일 테다. 인사청문회는 아무런 죄가 없다. 제도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일 뿐이다.



■후보자 자질 검증 더 철저해야

여당이 도덕성 검증을 후퇴시키는 쪽으로 제도를 변경하고, 이에 야당이 협조했다간 거센 민심의 반발에 직면할지 모른다. 인사청문회 방식과 관련해 지금처럼 후보자의 도덕성과 정책 능력을 모두 공개 검증해야 한다는 국민 의견이 76%나 돼서다. 반면 정책 능력만 공개 검증하자는 의견은 19%에 불과하다. 여론 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달 11~13일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또 리얼미터가 지난달 14일 전국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사청문제도 개선에 공감한다는 응답 47.9%, 반대 의견 45.5%로 엇비슷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사청문회법 개정에 앞서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함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면 안 되는 게 세상 이치다. 더 많은 걸 쥐기 위해, 더 높은 자리로 출세하기 위해 결격 사유를 숨기거나 청렴하지 않은 이들에게 국가 대사를 책임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사청문회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후보자 자질 검증을 국회가 대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제도를 개선하겠다면 여야가 기간 조정, 자료 제출 의무화, 위증 엄벌 등 보완을 통해 자질 검증은 더욱 꼼꼼하게 하면서도 질의의 수준과 품격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특히 새로운 공직자상 확립을 위해선 여야가 합의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인사를 임명하지 않는 것이 옳다. 국가 발전에 매진하고 국민을 위해 헌신하면서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고위 공직자 말이다.

국가 중책을 담당할 고위직에 도덕성과 청렴성은 생명이다. 따라서 청와대가 자질과 능력을 다 갖춘 인재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국민에게 자신 있게 제시하도록 만드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자 역량이며, 청와대의 책무다.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를 견제하는 중요 수단이라는 점에서 국회의 인사 검증은 강화돼야 할 것이다. “국회 청문회도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일하기 곤란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을 명심할 일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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