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푸른 세상에 들어온 이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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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三美

하늘이 푸른 것인지 땅이 푸른 것인지…. 어쨌든 세상은 온통 푸르다. 선선한 바람은 몸을 감싸고 돌면서 은은한 향기를 뿌려놓고 간다. 햇살은 나무 틈새를 비집은 다음 나그네의 마음까지 파고 들어온다. 지그시 두 눈을 감는다. 미세먼지에 찌들었던 마음은 상쾌해지고 맑아진다. 이곳은 전남 담양이다.

차분한 죽림욕 즐기는
죽녹원
끝도 없이 뻗은 산책길
메타세쿼이아 랜드
프랑스 남부 분위기
메타프로방스

■죽녹원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다. 이제 겨우 10시인데 자동차 온도계는 28도를 넘어서고 있다. 야외에 잠시 세워놓은 차 문을 열자 너무 더워 견디기 힘든 것인지 후끈한 열기가 숨을 헐떡이며 밖으로 튀어나온다.

자동차가 잘 다니지 않는 한가한 대로를 건너 대나무 밭으로 들어간다. 입구에서부터 빈 틈 하나 없이 대나무가 가득하다. 분죽, 왕대 등 다양한 종류의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틈새로 이어진 길 이름도 정답다.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추억의 샛길, 죽마고우 길, 운수 대통길, 선비의 길, 철학자의 길, 체험마을 가는 길…. 여기는 담양의 대표적 관광지인 죽녹원이다.

대나무 사이에서 밤을 보낸 뒤 아침을 맞아 산책하러 나온 공기는 무더운 바깥바람을 아직 만나지 않은 것인지 시원하면서 맑다. 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싸아~’하는 바람 소리는 시원하고 상큼하다.

코로나19를 피해 대나무 숲에서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려고 온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다. 마스크에 가려진 모두의 얼굴에는 흐뭇한 상쾌함이 가득 담겨 있다. 부모를 따라온 어린 아이는 기분 좋게 웃고 있고, 다정하게 사진을 찍고 있는 연인들의 두 눈에는 사랑이 흘러넘친다.

대나무 숲을 지나면 조선시대 학자들이 이용하던 담양 곳곳의 유명 정자를 재현해놓은 한옥 공간이 나온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치 빽빽한 대나무 숲에서 차분하게 죽림욕을 즐겼다면 이곳에서는 푸른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진 너른 공원을 거닐며 마음을 비울 기회다.

연잎이 조용히 낮잠을 즐기는 연못 한쪽에 아담한 정자가 보인다. 송순이 지은 ‘면앙정가’로 유명한 면앙정이다. 그가 지었다는 가사를 읊어본다.

‘하늘도 땅도 풍성하여라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경치로구나/ 인간 세상을 떠나왔지만 몸은 한가로울 겨를이 없어라(‘면앙정가’ 중에서)’

연못 주변에 설치된 나무 덱을 따라 걷는다. 한쪽에는 연못이, 반대쪽에는 대나무 숲이 산책객의 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시끄러운 새 울음 외에 소리라고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마음은 차분해지고 발걸음은 가벼워지는 분위기다.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었다는 식영정을 재현해놓은 정자가 나타난다. 댓돌을 밟고 마루에 잠시 앉아본다. 나지막하게 자작 가사를 읊는 정철의 맑은 표정이 하늘에 그려지는 착각에 빠져본다.

‘산속에 달력이 없어 사계절을 모르지만/ 눈 아래 헤친 경치가 철을 따라 절로 생겨나니/ 듣고 보는 것이 모두 신선 사는 세상이로다(‘성산별곡’ 중에서)’

환벽당, 소쇄원 광풍각, 명옥헌원림을 차례로 거쳐 다시 대나무 숲으로 돌아간다. 나가는 뒷길에는 각종 죽공예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나온다. 조금 더 걸어가자 담양에서 꽤 유명한 도넛을 파는 상점도 보인다. 상당히 걸은 터라 배가 꽤 출출해서 도넛을 한 봉지 산다. 달달하고 고소한 게 제법 먹을 만 하다. 왜 SNS에서 담양의 맛있는 음식이라고 소문이 요란한지 이유를 알 만하다



■메타세쿼이아 랜드

죽녹원에서 10분 거리인 메타프로방스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운다. 주차장 바로 앞 도로를 건너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랜드 입구가 나타난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1972년에 처음 조성됐다. 2000년 도로 확장 공사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몰렸지만 지역주민들이 보존 운동을 벌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차들이 다니던 도로였으나 지금은 온전히 산책길로 바뀌었다. 여기에 기후변화체험관, 개구리생태공원, 장승공원, 어린이프로방스 같은 시설이 새로 만들어졌다.

흙길 양쪽에 늘어선 키 큰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하늘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하얀 구름이 떠다니고 있다. 가로수길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뻗어있다. 도대체 얼마나 걸어야 하는 것일까.

가로수길 옆으로는 큰 연못이 조성돼 있다. 가로수길과 연못 사이에는 풀밭을 밟고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산책로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같은 공간이지만 어디로 걷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달라질 수 있다.

가로수길이 끝날 무렵 담양에서 키운 딸기로 만든 주스를 판매하는 찻집이 나온다. 시원한 딸기주스와 딸기요구르트는 상당히 수준 높은 음료수다. 가로수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줄 만한 메뉴다.

찻집에서 방향을 틀어 입구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가로수길이 아니라 연못 건너편의 산책로를 이용한다.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바깥에서 한눈에 볼 수 있어 또 다른 별미를 제공하는 길이다. 산책로의 벤치에 앉아 연못과 연못 너머 가로수길을 잠시 바라본다. 마치 푸른 나무 성벽을 쌓은 것 같다.



■메타프로방스

메타프로방스는 최근에 조성된 상업 및 문화공간이다. 패션 거리, 디자인 공방과 체험관, 상업 공간, 연회장 등 문화와 예술, 비즈니스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인근에는 펜션단지와 카페단지가 만들어져 있고 아울렛단지는 조만간 문을 열 예정이다.

메타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분위기를 살린 공간이다. 이색적인 분위기와 색감을 가진 건물로 이뤄져 있어 우리나라가 아니라 외국에 간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구석구석을 잘 찾아보면 독특한 사진을 담아낼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이 즐비하다.

깔끔하게 식사를 하고 차분하게 커피 한 잔을 즐기기에도 충분한 장소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소소한 잡화나 기념품을 살 수도 있다. 담양 삼미 여행의 마무리 코스로 적당한 곳이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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