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의 믹스트존] 수원 KT와 레스터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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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부 기자

지난 달 잉글랜드의 축구팀 레스터시티가 두번째 우승 동화를 썼다. 레스터시티는 잉글랜드 FA컵 결승에서 강팀 첼시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구단 창단 137년 만의 쾌거다.

레스터시티의 동화는 처음이 아니다. 1부와 2부를 오고가던 만년 꼴찌팀 레스터는 2015~2016시즌 프리미어리그 깜짝 우승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맨시티, 맨유, 리버풀, 첼시 등 빅클럽에 비해 레스터는 초라한 ‘중소기업’ 이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무명 선수들을 모아 꾸린 팀으로 슈퍼스타가 즐비한 강팀의 공세를 모두 잠재우며 축구팬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첫번째 우승으로 한 단계 도약하며 살림살이도 나아졌지만 레스터의 두 번째 동화 역시 순탄치 않았다. 우승 후 주전 선수들이 빅클럽으로 옮겼고, 그 사이 구단주가 헬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뜨는 아픔도 겪었다.

성공한 경험이 있는 레스터시티는 다시 뭉쳤다. 그리고 레스터 시민의 격려에 힘입어 첫번째 동화가 신기루가 아니었음을 보기좋게 증명했다.

레스터의 성공은 ‘머니게임’으로 치닫는 전세계 스포츠 산업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최근 유럽축구의 주요 12개 빅클럽은 ‘유럽슈퍼리그’ 창설을 시도했다. 마치 꿈의 리그를 만든 것처럼 포장했지만 제2의 레스터를 막는 ‘사다리 걷어차기’다.

결국 거센 반발에 부딪혀 ‘3일 천하’로 끝났다. 해당 팀 팬들을 비롯해 유럽 정치권까지 움직여 창설을 막았다. ‘그들만의 세상’에서는 기분좋은 반란과 감동이 없는 ‘돈잔치’로 전락한다고 여긴 것이다.

현대 스포츠는 자금력으로 무한 경쟁을 벌이는 자본주의의 결정체다. 프로, 아마추어 모두 마찬가지다. 그러나 감동과 드라마, 무엇보다 팬의 지지가 없으면 허상에 불과하다. 레스터의 동화가 감동을 주는 이유다.

앞서 유럽슈퍼리그처럼 코 앞의 돈만 좇는 구단은 결국 외면받는다. 최근 부산을 내팽겨치고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긴 KT 소닉붐의 얘기다.

부산시와 체육계의 간곡한 만류에도 KT의 머릿속은 오로지 수익성 개선만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시선은 수원시가 내민 달콤한 제안만을 향했다.

야반도주하듯 떠난 KT는 18년간 쌓은 팀의 역사, 희노애락, 팬들의 지지를 모두 버렸다. 수원 KT는 동일한 구단주, 동일한 선수들이 활동하지만 부산 KT의 사회적 자본을 물려받지 못한 ‘근본 없는 팀’일 뿐이다.

그러나 도약을 준비하는 롯데 자이언츠, BNK 썸 부터 창단 첫해 대학야구 왕중왕전에 진출한 아마야구 동의과학대까지 부산의 스포츠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번 KT 사태로 움츠러든 부산의 스포츠계가 레스터시티와 같은 동화를 쓸 날을 기대해본다.

lionki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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