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전 지역 주민 불안 내팽개친 해체연구소 예타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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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원전 역사상 처음 가동이 영구 정지된 고리 1호기의 해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원전해체연구소’ 설립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문턱에 걸려 1년 이상 지연될 전망이라고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예정된 해체연구소 착공이 관련 장비나 기자재 확보 없이 먼저 건물부터 지을 수는 없다는 기재부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기재부의 비전문적이고 단견적인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분야를 잘 모르는 기재부의 반대는 예비타당성 통과라는 형식적 틀에만 얽매여 원전 해체의 큰 방향을 왜곡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재부의 편협한 시각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재부, “건물부터 먼저 착공 안 돼” 반대
형식적 틀에 갇혀 원전 해체 큰 방향 왜곡

원전해체연구소는 2017년 6월 18일 영구 정지된 고리 1호기의 안전한 해체를 위한 기술 개발과 개발된 기술의 시험 등을 담당하는 핵심 시설이다. 연구소가 설립돼야 원전 해체의 전체 계획을 수립하고, 모든 일정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도 이 때문에 연구소 안건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지난해 4월부터 설립을 서둘렀다. 하지만 기재부는 연구소 착공이 고리 1호기 해체보다 빨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적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원전 해체는 아직 전인미답의 영역이다. 연구소 없이 어떻게 관련 기술을 개발할 수 있으며, 정해진 일정을 진행할 수 있겠는가. 기재부가 완전히 놓친 부분이다.

기재부 결정의 근거가 된 예비타당성 조사는 국가재정권을 쥔 기재부의 무소불위 권한이다. 기재부는 이를 통해 재정투자의 효율성을 꾀한다고 한다. 하지만 1999년 처음 도입된 이 제도에 대해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사회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수도권에 비해 지방에 지나치게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수도권 편향주의 잣대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이번 해체연구소 안건만 해도 그렇다. 해체될 고리 1호기 주변에 사는 주민의 불안감 등은 안중에도 없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첨단 해체 기술을 서둘러 확보해 국제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고리 1호기의 안전한 해체는 국가적으로 큰 과제이자 기회이다. 지역민의 안전을 비롯해 해체 과정에서 기술적인 문제나 폐기물 처리 등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다. 이 모두 해체연구소가 맡아야 할 핵심 업무다. 기재부 말처럼 원전 해체 돌입과 비슷한 시기에 연구소가 설립돼야 한다면, 이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원전 해체를 하자는 것과 똑같다. 한 가정의 일도 이런 식으로 진행하지는 않는다. 기재부 비토로 연구소 완공은 2024년 하반기에서 최소 2025년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고리 1호기 해체를 학수고대해 온 주민들만 또 기약 없는 기다림의 세월을 견뎌야 한다.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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