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시민 안전은 지자체의 엄중한 책임 의식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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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석 사회부

“교육청이 참석해서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부산 양정고등학교와 부산진여고 교문 앞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재개발 공사와 관련, 안전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에 홀로 불참한 부산진구청의 해명이다. “다른 업무가 있었다”는 불참 사유를 더했지만, 구청 관계자가 내뱉은 해명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속에는 무관심과 책임 전가, 안이한 안전 의식이 깔려 있었다. ‘교육청이 있으니 괜찮다’는 말은 구청의 존재 이유까지 흐릿하게 했다. 대책회의 하루 전, 광주 재개발 철거건물 붕괴 사고로 9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당했다.

지난 10일 부산진구청과 부산시교육청, 양정1구역 재개발 조합, 학교, 학부모들이 참석하기로 한 대책회의는 결국 관리의 핵심인 구청 없이 진행됐다. 이번 회의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는 학교장들의 요구 끝에 몇 개월 만에 마련됐다. 구청이 맡아야 할 역할을, 주민들이 구청에 기대한 책임감을 구청이 외면한 것이다.

부산진구청은 ‘안전사고가 우려되니 학교 앞 재개발 공사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달라’는 부산 양정고등학교 앞선 요청 공문도 사실상 흘려넘겼다. 학교 측은 올해만 해도 여러 차례 구청에 대책을 내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구청은 ‘조합과 중재하라’는 답변만을 반복했다. 구청이 승인한 양정1구역 주택재개발 사업시행인가 조건에 따르면 △학교 정문 200m 내 공사장 출입구 설치 지양 △통학로 안전 시설 강화 △학교 시험 시 공사 중단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진 것은 없었다. 학생 통학로는 군데군데 끊겨 있고 교문 바로 앞에는 공사 차량 출입구가 설치됐다. 학생들은 공사 차량을 피해 등교해야 했고, 학교 시험 중에도 소음을 동반한 공사가 진행돼 안전 문제에 교육 환경 피해까지 떠안아야 했다.

양정1구역 재개발 안전 대책은 구청 불참 속에 부산시교육청 주재로 학교와 조합 간 합의로 첫 단추를 끼웠다. 교육청은 교육시설물 확보 등 안전 대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해당 구청에 해당 정비사업에 대한 공사중지명령을 강력히 요청하겠다는 강수를 뒀다. 구청은 뒤늦게 합의 내용을 파악하고 “이행 여부를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재개발 광풍이 불면서 도심 곳곳 시민 생활권과 인접한 공간에서 정비사업이 진행 중이다. 부산 전역에 접수된 건축물 해체 허가·신고 건수는 총 1176건이다. 학교 앞부터 보행로 옆, 주거지 주변까지, 곳곳에서 건물을 무너뜨리면서 또 새로 올리고 있다. 부산시는 광주 건물 붕괴 사고 이후 심각성을 느끼고 부산 공사 현장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시민 안전은 행정 기관의 관심에서 시작된다. 사고 위험을 방치하고, 곧이어 벌어지는 사고를 교훈으로 삼는 행위를 반복해선 안 된다.

광주 붕괴 사고 이후 이용섭 광주시장은 “앞으로 시민 안전을 시정 제1가치로 삼겠다“는 입장을 냈다. 17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야 ‘앞으로’ 시민 안전을 우선하겠다고 한 것이다. 시민 안전은 제1의 가치다. 희생자가 나온 뒤의 반성은 늦다. 부산 도심 곳곳에도 위험성을 안은 재개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자체 책임 의식부터 바로잡아야 할 때다. kw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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