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보훈 없이 국가안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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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 폴리컴 대표

문재인 정부 들어 유독 보훈과 현충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 전시 내각의 노동상이었던 김원봉을 언급해 큰 논란과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는 현충일 다음 날 더불어민주당 전 상근부대변인이 “천안함 함장이 당시 생때같은 자기 부하들을 다 수장시켰다”라고 발언했다. 현충일 추념식이 벌어지는 동안 국립현충원 입구에서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과 생존 장병 16명이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밝혀라”며 피켓 시위를 벌인 데 대한 입장 표명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국가는 배타적 공동체다. 다른 국가와 배타적 주권을 기반으로 영토와 국민이 존재한다. 우리 주권이 미치는 영토를 다른 국가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 이 배타적 주권을 사수하고 관리하는 것이 국가 폭력이고, 국가를 합법적 폭력 집단이라 한다. 국가의 합법적 폭력은 대외적으로 군대에 의해 주권을 사수하고, 대내적으로 경찰에 의해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한다.

최근 보훈 관련 논란 끊이지 않아
나라 수호 군인·희생자 예우 중요

나와 내 가족 보호해 준다는 믿음
자발적인 애국심 유도하는 근본

국가의 최대한 관심과 지원, 보상
강력한 공동체 유지에 필수 요건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도 “압도적인 강제력이 없는 곳에 국가는 없다”라고 말했다. ‘압도적 강제력’ 없이 국가는 지속할 수 없다. 군사력은 국가가 존재하는 근원이고 군대는 국가를 지키는 최후 보루다. 군대는 무기보다 군인의 사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군인이 나라를 지켜야 할 이유가 분명할 때 사명감도 충만해지고 국방력도 극대화된다.

선진국은 하나같이 군사 강대국이다. 선진국 시민은 나라를 지키는 군인에게 최고 예우를 보낸다. 건국 이후 전쟁이 없었던 평화로운 캐나다조차 마을마다 메모리얼 파크를 만들어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한 자기 마을 출신 해외 참전 군인을 기린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은 국가의 요체다. 민주주의의 찬란한 꽃을 피웠던 아테네는 군사 강국이었다. 우연히 발견된 은(銀)을 나눠 갖지 않고 전함과 무기를 만들었다. 그 무기로 아테네는 에게해 패권을 장악했다. 전쟁이 끝나면 추도 제례를 통해 전몰 장병을 칭송했다. 노예까지도 희생에 대해 보상을 했고 미망인과 희생자 가족은 국가가 돌보았다. 이들은 국가가 자신과 가족을 지켜 준다는 확실한 믿음과 자부심이 있었기에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조선 시대 학자 오희문의 <쇄미록>에는 “왜군이 쳐들어왔는데, 아랫것들은 하나도 안 보이고 오히려 왜군을 환영해 줘서 걱정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무능한 조정과 양반의 폭정과 수탈에 진절머리가 난 백성들에게 조정은 왜구와 차이가 없었다.

국가가 나의 삶과 안위를 책임지지 않으면 애국심은 생겨나지 않는다. 전쟁 때 적진을 향한 돌진 명령을 기꺼이 따르는 것은 숭고한 애국심이 아니라 내 삶터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공동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애국심은 거창하고 거룩한 가치가 아니다. 국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하고 개인이 그런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애국심의 본질이다. 애국심은 일방적이지 않다. 나와 내 가족을 지켜 주는 국가를 수호하는 그 사적 이기심이 근간이다. 농부가 자기 밭을 지키고, 가장이 가족을 보호하는 마음으로 가족의 삶이 영위되는 밥벌이 터를 지키는 게 애국심이다. 애국심은 국가에 대한 일방적 희생이 아니라 주인 의식의 발로다.

6·25 참전 용사들이 약값을 지원받으려면 전국 6곳뿐인 보훈병원에 가야 한다. 이곳에선 참전 유공자 진료비 90%와 약제비 전액을 지원해준다. 하지만 집에서 가까운 전국 421곳 민간 위탁병원에선 진료비만 90% 지원해 줄 뿐 약값은 따로 부담해야 한다.

미국·호주·대만은 국가 예산 중 보훈 관련 비중이 3%에 가깝지만, 우리나라는 1.7%에 그친다. 100억 원 정도 예산만 있으면 될 일을 정부는 ‘예산 부족’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룬다. 이게 우리의 보훈 현실이다. 국방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된 이들을 국가가 지켜 주지 않으면 아무도 그런 무책임한 국가를 사수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천안함 장병 수장 발언은 국가안보 개념의 부재에서 발생한 문제다. 천안함은 대잠수함 기능이 없는 함정이었다. 잠수함 공격은 세계 최고인 미국 항공모함조차 방어하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훈련 중 기습 도발을 당해 빚어진 문제에 경계 책임을 묻는 건 어불성설이다.

백번 양보해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도발이든 아니든 경계에 책임이 있든 없든, 죽어 간 장병들을 최대한 예우하고 살아남은 장병들에겐 국가적 보상과 후유증 치료를 위한 최선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가족만 잘살면 된다는 사적인 이기심만 자라고, 먼저 나서서 나라를 위해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국가의 요체는 부국강병이고 이는 나라를 지키는 이들을 충분히 예우할 때 실현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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