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훈민정음 금속활자’ 무더기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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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를 포함해 15~16세기에 제작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임진왜란 이전에 제작한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1455년 무렵 제작된 한글 활자로 약 30점만 현존한다고 알려졌는데, 이곳에서 조선 전기 활자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서울 인사동 환경정비사업 부지
15~16세기 제작 600여 점 나와
한자 활자도 1000여 점 포함
천문시계·물시계 부품도 출토
“한글 창제 인쇄 활동 중요 자료”

이와 함께 그동안 기록으로만 전하던 조선 전기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부품과 ‘자격루’와 같은 물시계 시보 장치 부품인 ‘주전(籌箭)’의 일부로 보이는 동제품도 함께 발굴됐다. 세종 시대 과학유산 흔적이 대규모로 발굴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은 탑골공원 인근 ‘서울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인 인사동 79번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을 비롯해 세종~중종 때 제작된 물시계의 부속품인 주전,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 1점, 중종~선조 때 만들어진 총통(銃筒)류 8점, 동종(銅鐘) 1점 등의 금속 유물을 한꺼번에 발굴했다고 29일 밝혔다. 마치 땅속에 있던 박물관이 지상으로 출현했다고 할 정도로 올해 고고학 발굴의 최대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유물은 금속활자다. 한자 활자 1000여 점과 한글 활자 600여 점이 나왔다. 이들 금속활자 중에서도 더욱더 눈길을 끄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다.

이번에 한꺼번에 출토된 이들 금속활자는 조선 전기 다종다양한 활자가 한곳에서 출토된 첫 사례로 그 의미가 크다. 또한,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돼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점,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가 모두 출토된 점 등은 최초의 사례다. 특히 이번에 발굴된 금속활자 중에는 구텐베르크가 1440년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와 인쇄술을 개발할 무렵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유물이 포함됐다.

이 외에도 전해지는 예가 극히 드문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표기해 연결하는 어조사의 역할을 한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 점 출토됐다. 현재까지 전해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 ‘을해자’(1455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보다 20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 확인된 점은 유례없는 성과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는 한글 창제의 실제 여파와 더불어 활발하게 이루어진 당시의 인쇄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면서 “현재 금속활자들의 종류가 다양해 조선전기 인쇄본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여러 활자의 실물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도기항아리에서는 금속활자와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들이 잘게 잘려진 상태로 출토됐다.

주전은 동그란 구멍이 있고 ‘일전’(一箭)이라는 글씨를 새긴 동판, 걸쇠와 은행잎 형태 갈고리가 결합한 구슬 방출 기구로 구성된다. 이러한 형태는 에 나오는 주전 관련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동제품이 주전이라면 세종 20년인 1438년 제작된 경복궁 흠경각 옥루나 중종 31년인 1536년 창덕궁에 새로 설치한 보루각 자격루의 부속품일 가능성이 있다. 옥루는 현존하는 부재가 전혀 없고, 자격루는 물통 일부가 남아 국보로 지정됐다.

활자가 담겼던 항아리 옆에서는 주야간의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가 출토되었다. 일성정시의는 낮에 해시계로 사용하고,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한 도구이다. 에는 1437년 일성정시의 4개를 제작했다고 기록됐는데, 전래하지 않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형화기인 총통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으로 구성되는데, 길이는 모두 50∼60㎝이다. ‘계미’(癸未) 글자가 있는 승자총통은 1583년, ‘만력무자’(萬曆戊子)라는 글자를 새긴 소승자총통은 158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동종은 ‘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이라는 글자가 있어 1535년 4월에 제작됐음이 확인됐다.

이번에 유물이 나온 지점은 종로2가 사거리, 탑골공원 서쪽이다. 종로 뒤편에 있는 작은 골목인 피맛골과 인접한 땅이다. 유물이 확인된 곳의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는 고고학적으로 큰 의미를 둘 만한 장소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에 발굴된 유물들은 금속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사용, 폐기 시점은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만력(萬曆) 무자(戊子)년에 제작된 소승자총통이 있어 1588년 이후에 같이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보존처리와 추가 연구를 거치면 조선 전기 인쇄술과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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