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면 끄기 힘든데… 전기차 13만 대에 ‘진압 장비’ 137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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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기차 보급률이 크게 늘고 있지만 화재에 대응할 진압 장비는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전기차 등록대수는 총 13만 4962대이지만 배터리 ‘열 폭주’를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장비인 질식소화덮개는 국내에 137개밖에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재호(부산 남을) 의원이 1일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의 전기차 화재 발생사고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2017년에는 1건에 불과하던 전기차 화재 사고가 2018년에는 2건, 2019년에는 7건, 2020년에는 10건으로 늘었다.

전기차 보급 늘며 화재도 증가
배터리 ‘열 폭주’로 진압 어려워
‘질식소화덮개’ 부산 4개 그쳐
냉각·산소 차단 ‘소화 수조’는
경기 화성·일산만 갖추고 있어

전기차 화재의 가장 큰 문제는 화재 발생 시 진화 시간과 비용이 다른 화재에 비해 훨씬 많이 든다는 점이다. 해외 한 언론에 따르면 미국에서 발생한 전기차 1대 화재 진압에 들어간 물은 10만t으로 현지 소방서 한 곳에서 보통 한 달 동안 사용하는 양이고 가정집에 2년 동안 공급되는 용수와 맞먹는다. 또한 지난해 5월 대구에서 발생한 전기차 현대 코나 차량 화재 진압 시간은 2시간 11분에 달했다.

이처럼 내연기관 차량과 달리 전기차 화재 진압이 어려운 이유는 배터리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철재로 덮여 있어 소화약제가 제대로 침투하지 않는다. 또한 진화된 이후에도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열 폭주’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완전 진압이 까다롭다. 열 폭주가 생기면 배터리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산소와 열이 결합해 다시 불이 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물을 이용해 배터리를 냉각하는 방식보다 질식소화덮개를 활용해 공기를 차단하는 것이 유용하다. 하지만 질식소화덮개 보급률은 전기차 누적 대수에 비교하면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지역소방본부별 보유 현황을 보면 전남소방본부가 42개로 가장 많고 △인천 18개 △강원 15개 △울산 12개 △경남 8개 △광주·세종 7개 △전북 6개 △충남 5개 △부산·서울 4개 △대구 3개 △제주 2개 △창원·경기·경기북부·충북 1개 순이다. 부산의 경우 부산진소방서와 강서소방서가 각각 1개, 남부소방서가 2개를 보유 중이다. 부산시가 올해 3500대의 전기차 보급을 목표로 구매 보조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을 이용한 냉각과 산소 차단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소화 수조' 보급 현황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전국에 2개 뿐인 데다, 이마저도 경기 화성소방서, 일산소방서 등 수도권에만 있다.

‘2021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전기차를 10만 대를 추가로 보급하며 내년 말까지 국내 누적 전기차 보급 대수를 23만 대까지 확대할 계획인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 의원은 “전기차 화재가 많아 지고 있기 때문에 화재 대응 위한 매뉴얼, 장비 등 전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며 “전기차 소방대응 역량 점검과 함께 차량제작사의 책임 있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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