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학 기행] 현명한 군주 내쫓은 어리석은 백성들의 최후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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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문학 기행-독일] 뮌헨 센들링거 토어


■시장의 배신


260년 전 뮌헨은 형제인 에르네스트 공작과 빌헬름 공작이 공동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두 공작은 백성들에게 아주 인자하고 친절한 통치자였다. 당시 다른 지역의 군주들과는 달리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 재산을 모으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이 다스리는 지역에 있는 모든 백성이 편안하고 여유롭게 사는 것뿐이었다. 두 공작이 도시를 아주 잘 다스린 덕분에 뮌헨은 바바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널리 소문이 났다.


뮌헨 님펜부르크 궁전. 뮌헨 님펜부르크 궁전.

두 공작에게는 루드비히라는 아주 잔인한 사촌이 있었다. 그는 두 사촌을 쫓아내고 뮌헨의 재산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뮌헨을 삼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뮌헨 시장이 그에게 접근했다.

“저에게 영원히 시장 자리를 맡겨주시고, 적당한 포상만 해주신다면 공작님을 뮌헨의 군주자리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자네가 나를 도와준다면 이미 일은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지. 내가 뮌헨을 얻게 된다면 자네에게 아주 충분히 상을 내리도록 하겠네.”

루드비히를 몰래 만나 밀담을 나눈 시장은 질이 나쁜 부하 몇 명을 골랐다. 그들에게 어네스트, 빌헬름 공작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처음에 소문을 믿지 않던 백성들은 이곳저곳에서 말이 터져 나오자 나중에는 사실로 믿게 됐다. 민심은 날이 갈수록 흉흉해졌다.

부하들은 더 많은 소문을 퍼뜨렸다. 민심이 더 나빠졌다. 두 공작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백성들은 믿지 않았다.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두 공작은 옳지 않아. 통치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했다.

급기야 백성들은 세금 납부를 거부하고 나섰다. 세리들이 각 집을 돌아다니며 납부를 독려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거부하기 일쑤였다. 두 공작은 모멸감과 분노에 사로잡혔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공작은 시장을 다시 불러 어떻게 하면 좋을지 논의했다.

“두 분 전하께서는 백성들을 혹독하게 다루시는 것은 싫어하십니다. 하지만 백성들 사이에 두 분에 대한 친절한 마음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폭동이 일어난다면 이 불명예스러운 도시를 떠나시는 게 낫습니다. 두 분 전하가 안 계신 뮌헨이 어떤 꼴로 변하는지 백성들이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겁니다. 고생을 해보면 백성들은 다시 두 분을 찾으면서 복종하게 될 겁니다.”

며칠 뒤 시장 부하들의 선동에 유혹된 백성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이를 본 두 공작은 말을 타고 궁전을 떠났다. 그들은 페테르스 키르헤(성베드로 성당)를 지나 센들링어 가세(센들링 거리)를 지나 바일하임으로 피신했다. 시장은 뮌헨 성벽에 올라 두 공작이 뮌헨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을 비웃었다.

“두 공작은 말을 참 잘 타는군. 우리는 그렇게 못 하지. 껄껄. 화가 많이 나 보이는군. 그러면 분노의 표시로 주먹을 불끈 쥐도록 해보시지. 물론 그래봐야 아무 의미도 없을 테지만…. 당신들이 엉뚱한 짓을 하려 한다면 내가 당신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도록 하지. 하지만 이것 하나만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일단 밖에 나가면 다시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거라는 점을 말이야.”

두 공작을 몰아낸 백성들은 골목길, 광장, 선술집에 모여 앞으로 서로 헛소리를 지껄였다. 처음에는 무용담을 자랑하다 나중에는 두 공작을 조롱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시장은 부하들에게 루드비히를 모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두 공작은 백성들이 두려워서 달아난 거야. 이제 우리의 통치자는 그들의 사촌인 루드비히 공작이 돼야 해. 그분이야말로 용감하고 자비로워서 진정한 통치자 감이지.”

“루드비히 공작이 뮌헨에 자유롭고 평화롭게 입성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마음에서 두 공작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밝지 못할 거야. 황금 같은 미래를 밝히기 위해서는 서둘러 루드비히를 모셔야 해.”

시장의 부하들이 뮌헨 시내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드는 동안 루드비히 공작은 서서히 뮌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앙거 토어(앙거 문)를 통해 여유롭게 뮌헨에 입성했다. 시장은 마지못해 그에게 문을 열어주는 시늉을 했다.

루드비히는 앙거 토르 주변에 모여 있던 백성들을 둘러보면서 아주 인자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보였다. 그의 뒤에 서 있던 한 사내가 큰 보따리를 풀더니 사람들 사이로 수천 개의 동전을 던졌다.

“루드비히 공작께서 뮌헨을 다스리게 된 것을 축하하면서 백성들에게 주는 첫 선물이다. 다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도록 하라.”


크리스탄 프레데릭 칼 홈의 ‘센들링거 토어’ 크리스탄 프레데릭 칼 홈의 ‘센들링거 토어’

■루드비히의 수탈


루드비히는 천천히 말을 몰아 궁으로 갔다. 이렇게 해서 뮌헨은 그의 소유가 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은 이제 좋은 시대가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는 루드비히 밑에서 평생 시장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권력도 챙기게 됐다며 흐뭇해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물론 시장은 이것이 엄청난 착각임을 알지 못했다.

“전하, 우리가 게임에서 이겼습니다.”

시장은 다음날 궁을 방문해 루드비히 공작 앞에서 신나는 목소리로 떠들었다. 그런데 공작은 아주 냉정한 표정을 보이면서 시장의 등을 철썩 쳤다.

“우리가 이긴 게 아니라 내가 이긴 것이지. 내가 자네를 믿지 않으니까 말일세. 자네는 이를 테면 배신자인 셈인데, 내게도 똑같은 짓을 할지 모르지 않나? 앞으로 몸조심하도록 하게. 말은 물론 행동 하나하나도 주의해야 할 거야. 나는 두 사촌 형님보다도 더 많은 눈들을 도시 곳곳에 심어두었다는 사실을 잘 명심하도록 하게.”

시장은 깜짝 놀랐다. 루드비히 공작이 ‘수고했네’ 라는 말을 하면서 상금을 주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도 협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시장, 두 사촌 형님이 다스리던 과거는 이제 사라졌어. 백성들에게 그 시절은 잊으라고 하게. 앞으로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내일 포고문을 하나 붙이도록 하게. 세금을 지금의 배로 올리도록 하겠다고 알리게.”

“전하, 며칠 전 두 공작이 백성들의 폭동으로 쫓겨났습니다. 지금 세금을 올린다면 폭동이 재발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말을 하자 루드비히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칼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부터 내 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내가 내리는 명령을 실천하지 않는 자에게는 동전 대신 이 칼을 선물로 주겠다. 이 말도 모두에게 알리도록 하라.”


뮌헨 라트하우스. 뮌헨 라트하우스.

시장은 루드비히의 고성에 놀라 달아나듯이 궁을 빠져나갔다. 궁의 문이 쿵 하며 닫히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두 다리를 후들들 떨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의 마음에는 수치심과 분노가 동시에 피어올랐다. 그는 곧바로 시청, 즉 라트하우스로 달려갔다. 광장에 모든 백성을 모이라고 했다. 그리고 루드비히가 밝힌 말을 그대로 알렸다.

“여러분의 새 주군께서 첫 포고를 내리셨다. 내일부터 모든 세금을 배로 올린다고 하신다. 이에 불복하는 자에게는 동전 대신 칼을 선물로 주신다고 하신다.”

시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백성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질었던 옛 군주들을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훌륭한 두 분을 쫓아낸 것은 다 네 탓이라며 서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서로 주먹다짐을 했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기 때문이다.

시민들을 다음 날부터 어쩔 수 없이 세금을 배로 내야 했다. 세금 인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루드비히는 1주일 후 다시 세금을 배로 올렸다. 그리고 1주일 뒤에 또 세금을 배로 인상했다. 이 같은 조치는 거의 반 년 가까이 이어졌다. 루드비히의 세금 인상은 마치 뮌헨에 사는 모든 백성을 거지로 만들기 위한 조치 같았다. 그는 세금에 대한 반감으로 폭동이 일어날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당장 군대를 보냈다.

백성들은 절망의 나락에 빠졌다. 불과 반 년 전만 해도 바바리아에서 가장 부자도시로 소문났던 뮌헨이, 백성들이 가장 풍요롭고 안락하게 산다고 알려졌던 뮌헨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로 전락한 것이었다. 가난한 정도가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몇 달 지나지 않아 뮌헨에 사는 모든 사람이 굶어죽을 처지가 된 것이다.

사정은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포상을 하지 않은 루드비히의 처사에 분개하기에 앞서 두 공작을 쫓아내는 작전에 동참한 부하들에게 내려줄 상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됐다. 그는 재산을 팔아 그들에게 포상을 했지만, 그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부하들은 수시로 시장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백성들과 두 공작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알면 당신을 그냥 둘까요? 두 공작님이 이 사실을 알면 바로 뮌헨으로 돌아오시겠지요? 그들이 다시 권력을 되찾으면 당신은 어떻게 될까요?”

시장의 주머니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개인 돈을 털어 부하들의 입을 막다 나중에는 시의 재산을 빼돌려 주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도저히 돈을 마련할 방도가 없게 됐다. 원래부터 질이 좋지 않았던 부하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꼭 묶어두었던 입을 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일 밤 루드비히 공작과 시장 몰래 백성들을 만나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사실 어떤 일이 있었느나 하면 말이야. 시장이 두 공작님을 쫓아내려고….”

부하들이 퍼뜨린 고변은 순식간에 뮌헨의 모든 백성에게 알려졌다. 이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병석에 드러누운 노인이나 철모르는 어린이들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된 백성들의 분노는 절정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루드비히의 연이은 세금 인상 때문에 힘들어 죽을 처지인데, 사실 모든 것이 시장의 음모였다는 사실이었다니….

백성들은 다시 시청 앞 광장에 모였다. 두 공작이 물러날 때보다 훨씬 큰 폭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시장의 집에 쳐들어갔다. 그는 마침 시청에서 일을 하느라 집을 비운 상태였다. 폭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들은 시장은 루드비히 공작을 찾아갔다. 그는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간청했다.

“공작님, 제발 살려주세요. 저 폭도들을 그냥 놔뒀다간 저는 죽고 말 겁니다. 그 다음에는 공작님에게 화살이 돌아갈 겁니다.”

“내가 이곳을 통치하는 한 자네는 보호받을 걸세. 그건 걱정 말게. 하지만 내가 떠나고 난 뒤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자네가 책임져야 할 거야. 그건 자네 일이니까. 이제 뮌헨에서는 더 이상 빼먹을 게 없는 것 같군. 이렇게 가난하고 난폭한 백성들이 군주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무엇 있겠나? 이 말은 내가 떠날 때가 됐다는 것이지. 이제 그만 내 궁에서 나가주게. 당장~~”

시장은 비틀거리며 궁에서 나갔다. 공작은 병사 몇 명을 그에게 붙여줬다. 뮌헨을 떠날 때까지는 아직 시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은 주변에 달려드는 백성들을 칼과 창으로 위협해 쫓아낸 뒤 시장을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폭도들이 그의 집을 습격하지 못하게 하루 종일 대문 앞에서 경비를 섰다.

시장이 궁을 떠나자마자 루드비히는 신하들에게 짐을 꾸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이제 가난한 도시 뮌헨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거둔 모든 세금과, 궁 안에서 금이든 은이든 동이든 상관없이 값어치가 조금이라도 나가는 게 있거든 모두 수레에 싣도록 하라. 짐을 다 싣는 날 뮌헨을 떠나 원래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겠다.”

며칠 뒤 일요일 오전 7시 페테르스 키르헤(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가하고 돌아온 그는 말에 올라탄 뒤 모든 재산을 실은 수레 수십 대를 이끌고 궁을 나섰다. 수레 주변에는 수백 명의 병사, 기사들이 따르게 했다.

분노한 백성들은 그들의 주변을 에워쌌다. 하지만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루드비히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백성들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고 웃기만 했다. 수레 행렬이 센들링거 토어(센들링 문)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는 갑자기 등을 뒤로 돌리더니 안장에 얹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 동전 수십 개를 꺼내 백성들에게 던졌다.

“이것이 마지막 선물이다. 훌륭한 군주들을 저버린 너희들은 더 이상 받을 자격조차 없어. 나에게 축복을 선사한 너희들의 시장에게 깊은 감사를 남기고 나는 떠난다. 그의 속임수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나팔수, 진격의 나팔을 불어라. 고향을 향해 앞으로 가자!”

루드비히는 말을 마친 뒤 껄껄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느긋하게 말을 몰면서 센들링거 토르를 지나 뮌헨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분노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모든 게 시장 때문이야. 그 놈을 살려둘 수는 없다.”

루드비히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사람들은 시장의 집으로 몰려갔다. 낌새를 눈치 챈 시장은 집에서 달아났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을 찾아가 숨겨달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려고 하지 않았다.

“당장 내 집에서 꺼져, 이 배신자야!”

시장은 할 수 없이 뮌헨의 골목 이곳저곳으로 도망을 다녔다. 사람들은 그를 뒤쫓아 추격전을 벌였다. 그는 루드히비가 기나간 센들링거 토어 쪽으로 달아나 문을 꼭 잠그고 위로 올라갔다.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경우 탑 아래로 뛰어내려 달아나거나 죽을 생각이었다. 시장이 센들링거 토어에 숨었다는 사실은 곧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사람들은 센들링거 토어로 몰려가 잠긴 문을 부쉈다. 시장은 결국 몰려든 사람들에게 붙잡혀 끌려 내려왔다.


뮌헨 센들링거 토어. 뮌헨 센들링거 토어.

■돌아온 옛 군주


다음날 사람들은 다시 시청 앞 광장에 모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시 행정관이었다.

“사태를 조기에 진정시키고, 뮌헨을 옛 모습으로 되돌려놓기 위해서는 옛 군주들을 다시 모셔야 합니다. 대표단을 뽑아 두 분에게 보내 진정으로 사죄를 하고, 뮌헨에 돌아와 달라고 호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행정관은 옛 군주들에게 찾아갈 대표 9명을 뽑았다. 그들은 다차우 근처에 머물고 있던 두 군주에게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뮌헨에 돌아와 달라고 간청했다.

“백성들은 선량하고 무지합니다. 그들은 단지 악마의 유혹에 속았을 뿐입니다. 두 분께서 이 점을 이해해주시고 그들에게 마음의 칼날을 세우지 않으신다면 제발 돌아와 주십시오. 모든 백성이 두 분의 귀환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두 공작은 이미 여러 정보원들을 통해 뮌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다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먼저 백성들에게 달려갈 수는 없는 일이어서 머뭇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백성들을 대표한 사람들이 찾아와 간청하자 그들은 무척 기뻤다. 그들은 곧바로 짐을 꾸려 뮌헨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에르네스트 공작과 빌헬름 공작이 저기 돌아오신다. 성문을 활짝 열어라.”

옛 군주들이 돌아오는 모습에 감격한 뮌헨 백성들은 앙거 토어를 활짝 열고 나팔을 힘껏 불었다. 두 사람이 문을 통과할 때는 함께 만세를 외쳤다.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된 감격에 겨워 통곡을 하는 아낙네들도 적지 않았다. 에르네스트 공작은 말에서 내려 그들을 둘러보며 연설을 했다.

“여러분에게는 아주 엄하고 영속적인 벌을 내리는 게 마땅합니다. 아주 심각한 죄를 지었고 성스러운 의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나와 빌헬름의 통치를 받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통치를 받는 게 훨씬 낫다고 착각했습니다. 사촌 루드비히가 떠나면서 한 말 중에서 틀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에르네스트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질타의 말을 이어나가자 백성들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얼굴이 벌게졌고, 다른 이들은 자책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잊고 용서하겠습니다. 어떤 불행이나 처벌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빈 지갑이 군주를 배신한 여러분에게 남겨진 유일한 벌입니다.”

에르네스트의 말이 끝나자 백성들은 기쁨에 넘쳐 환호성을 질렀다.

“에르네스트 공작님 만세, 빌헬름 공작님 만세~~”


두 공작은 궁에 다시 입성했다. 궁은 텅 비어 있었다. 촛대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허탈했지만 그렇다고 아쉽거나 아까웠던 것은 아니었다. 촛대는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들면 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두 공작은 이번 사건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를 시작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시장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두 공작은 백성들을 라트하우스 앞으로 모이게 했다. 그리고 시장을 끌고 오라고 했다. 시장은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공작 앞에 무릎을 꿇었다.

“존경하옵는 에르네스트 공작님, 빌헬름 공작님. 제가 두 분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 어리석은 백성들은 헛소문만 믿고 두 분과 저 사이를 이간질시키려고 합니다. 제발 저들의 말을 믿지 마시고 저를 살려 주십시오.”

시장은 두 공작 앞에서 거짓말만 늘어놓았다. 백성들은 그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어떤 사람들은 썩은 계란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 두 공작은 조용히 그들의 말과 백성들의 야유를 듣고 있었다. 잠시 후 빌헬름 공작이 일어섰다. 그는 아주 낮으면서도 비장하고 장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탄 같은 자여! 어떻게 목숨을 살려달라고 말할 수 있지? 너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죽음의 공포에 떨었는지 아는가? 너의 목은 아직 붙어 있다. 그러나 차라리 죽여 달라고 말하게 될, 그런 처벌을 너에게 내리겠다.”

빌헬름 공작이 잠시 말을 멈추자 에르네스트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서 말을 이었다.

“너는 우리에게 주었던 ‘충고’라는 것을 기억하느냐? 탑 위에서 네가 우리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면서 한 말도 기억하느냐? ‘한 번 밖에 나가면 영원히 안에 들어올 수 없다’며 너는 껄껄 웃었지! 자, 보라. 우리는 이렇게 돌아왔다. 너의 모든 말은 결국 빈말이 되고 말았다. 이제 너에게 한마디를 돌려주겠다. 그 한마디는 영원히 진실로 남을 것이다. 시장을 센들링거 토어의 탑에 가두도록 하라. 벽돌 두 개 정도의 창문만 남기고 탑을 모두 막도록 하라. 저 자에게는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만 주도록 하라. 시장, 너는 탑 안에 갇힐 것이다. 일단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저 자가 갇힌 탑 위에 주먹 모양 조각을 설치하도록 하라. 앞으로 정의와 의무를 무시하고, 군주와 백성을 속이려는 모든 자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리라."

에르네스트 공작이 형벌을 선고하자 시장은 절망에 사로잡혀 기진맥진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병사들은 그를 일으켜 탑으로 끌고 갔다. 시장이 갇힐 탑 안의 좁은 공간에는 이미 석공이 와서 벽돌을 쌓고 있었다. 탑 아래에는 백성들이 몰려와 수백, 수천 마디의 저주를 퍼부었다. 잠시 후 시장은 머리 위에서 망치 두들기는 소리를 들었다. 배신자를 상징하는 주먹 조각이 세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시장은 센들링거 토어의 탑에서 4년 반을 갇혀 지냈다. 간수들은 처음에는 매일 발광하고 분노하는 소리를 들었다. 시간이 좀 흐르자 이번에는 탄식하고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마지막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장은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간수에게 목사를 불러달라고 했다.

“두 공작님께 용서를 빈다고 전해주십시오. 마찬가지로 백성들에게도 잘못했다는 저의 사죄를 전해주십시오. 저의 시간은 이제 끝나가고 있습니다. 죽을죄를 지은 죄인이지만, 저를 위해 다들 성모 마리아께 기도를 드려달라고 부탁해 주십시오.”

목사는 그의 요청을 두 공작과 다른 백성들에게 전했다. 며칠 뒤 시장이 굶어 죽은 시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시민들에게 알려졌다. 그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불쌍한 시장의 영혼을 구제해달라고 기도했다.


뮌헨 센들링거 토어. 뮌헨 센들링거 토어.

■최후의 결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천벌을 받아야 할 마지막 한 명이 더 남았가 때문이다. 바로 루드비히 공작이다.

두 공작이 뮌헨을 다시 통치하고 수년이 흘렀다. 안정을 되찾은 백성들은 생업에 열중했고, 그 덕분에 뮌헨은 다시 부자도시로 성장했다. 백성들은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았고, 엄청난 세금 때문에 시달리는 일도 없이 평화롭고 여유롭게 살았다.

뮌헨의 모든 재산을 빼앗아 갔던 루드비히가 이 소식을 들었다. 그는 다시 뮌헨을 차지하고 싶었다. 지난번에는 시장의 도움으로 간계를 썼지만, 이번에는 직접 무력을 동원하기로 했다. 그는 수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비밀리에 뮌헨으로 쳐들어갔다.

두 공작은 루드비히의 군대가 오기 며칠 전에 이 소식을 이미 들었다. 그가 언제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한 두 공작이 미리 밀정을 루드비히의 도시에 파견해둔 덕이었다. 그들은 군대를 소집해 성문을 열고 나갔다.

뮌헨의 군대와 루드비히의 군대는 뮌헨 외곽 블루텐부르크에서 만났다. 지금 님펜부르크 궁전 인근에 있는 지역이었다. 뮌헨의 병사들은 죽을 각오로 싸웠다. 여기서 지면 다시 수년 전의 악몽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았다. 여기서 죽으나, 나중에 루드비히에게 시달리다 죽으나 어차피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악착같이 싸웠다. 반면 루드비히의 병사들은 목숨을 아까워했다. 전투에서 이겨봐야 득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전리품은 루드비히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뮌헨 님펜부르크 궁전. 뮌헨 님펜부르크 궁전.

당연히 전투는 뮌헨의 승리로 끝났다. 루드비히의 군대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달아났다. 블루텐부르크에는 뷔름 강이 있다. 강물은 루드비히 병사들의 피로 벌겋게 물들었다. 블루텐부르크라는 이름은 ‘유혈의 도시’라는 뜻이다.

루드비히는 겨우 목숨만 건져 달아났다. 그런데 그에게는 뜻밖에도 아들의 배신이라는 ‘천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공작 자리를 빼앗긴 채 여기저기를 떠돌며 도망을 다녀야 했다. 그는 마지막에는 아들에게 붙잡혀 부르크하우젠의 탑에 갇혀 굶어 죽었다고 한다.

뮌헨에는 센들링거 토어가 아직 남아 있다. 뮌헨 여행의 중심지인 마리엔플라츠에 있는 카우프호프 백화점 뒤에서 시작한 센들링거 슈트라세(센들링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탑이 세워져 있다. 같은 이름의 지하철역도 있다. 탑은 여름에는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다. 탑 위에 주먹 조각이 아직 남아 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독일 여행, 뮌헨 여행을 가실 일이 있으면 저 대신 한 번 찾아보기 바란다.


뮌헨 센들링거 슈트라세. 뮌헨 센들링거 슈트라세.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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