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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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여러 백신의 효능이나 부작용에 대한 말이 많다. 그래서 전문가들에게 어느 백신이 가장 좋으냐고 물었더니 100명이면 100명 모두 똑같은 답변이 나왔단다. “가장 빨리 맞는 백신이 가장 좋다.” 10원이라도 더 싼 주유소를 찾아다니느라고 길 위에서 시간이며 연료를 낭비하지 말라는 경구와 같은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돌아가신 박완서 작가의 수필이 생각난다.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은 대부분 커피를 많이 마신다. 글을 쓸 때 더 집중이 잘되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도 하루에 여러 잔을 마시는 커피 애호가였는데, 그런 사정을 들은 주변에서 나름 도움되라고 이 커피가 맛있다, 저 커피가 맛있다, 이렇게 마시면 더 맛있다, 저렇게 마시면 더 맛있다는 말씀들을 많이 했던가 보다. 그래서 선생도 이 커피 저 커피 찾아다니면서 이렇게도 마셔 보고 저렇게도 마셔 봤는데, 언제부터인가 커피에 신경 쓰느라고 오히려 글쓰는 일에 집중이 안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부터 이 커피 저 커피 모두 끊고 처음 마셨던 빨간 뚜껑 O심 커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집중력 위해 커피 애호 박완서 작가
주변에서 다양한 커피 추천
커피 집중하다 보니 글 집중 안돼

현 정부 지지율 하락 원인 부동산
정책 부족이 아니라 너무 많은 정책
중요 정책 집중할 동력 잃어



워낙 게으르다 보니 젊어서도 그다지 복잡한 생활을 산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능하면 단순한 생활을 살자고 노력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이가 들수록 집중력도 떨어지고 지속력도 떨어진다. 일이든 생활이든 단순해야 정말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다. 한낱 필부의 삶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라 살림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진행 중이다. 후보가 아홉 명에서 여덟 명이 되었다가 이제 여섯 명으로 추려졌다. 그런데 한 예비 경선 토론회의 사회자가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 정책이 실패인가 하고 묻자, 후보자 모두가 O이라고 대답했다. 이 정부가 잘못한 정책이 한두 가지가 아니 터인데 모든 후보자가 한마음 한뜻이라니 부동산이 문제이긴 하나 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다.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반대로 정책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정책이 많다 보면 서로 중복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때로는 상충되는 일도 많다. 이럴 때는 당연히 정책의 경중과 완급을 따져 더 시급한 정책과 더 중요한 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해야 효과가 있을 터인데, 정책 담당자들조차 무슨 정책이 언제 나왔는지 모르면서 사흘에 한 번씩 정책을 만들고 발표하는데 온 힘을 다 쏟다 보니 정작 해야 할 일에 집중할 능력이 남아 있지를 못한 것이다.

요즘 민주당과 기획재정부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긴급재난지원원금 문제도 그렇다. 민주당은 전 국민에게, 기재부는 하위 80%에게 지원하자고 다툰다는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20%의 국민에게 줄 지원금을 아끼려고 국민들을 선별하고 소득은 물론 금융재산과 다른 조건들을 따지고 계산한다면 그 비용이 더 들 것이 뻔하다. 거기에 들어가는 인력과 비용을 다른 데 더 집중해서 사용하는 것이 당연히 더 효율적이다.

그래도 꼭 선별 지급을 하려면 차라리 80%가 아니라 40%든 20%든 정말 하위 소득자들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옳다. 국민 80%에게 지급하면서 꼭 필요한 하위소득자들을 선별해서 지급한다는 주장은 우습다.

무엇보다 과거 무상급식 논쟁부터 이 정부의 복지정책이 추구해 온 기본방향은 보편복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겠다는 기재부의 주장은, 부잣집 아이들에게까지 공짜로 밥을 주어야 하느냐고 따졌던 지난 정부의 주장과 똑같아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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