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구·군 ‘조례 복제’… 10개 중 9개 서로 베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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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선거로 구성된 지방의회가 출범한 지 30년이 흘렀다. 지역민의 삶을 바꾸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이상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을까?

4393개 중 고유 조례는 300개뿐
대부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중복
수영구 겹치기 비율 96.4% ‘최다’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 취지 무색
의원들 전문성과 역량 보완돼야

‘동네 일꾼’으로 불리는 기초의회 의원이 얼마나 일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는 부산 16개 구·군 조례를 조사했다. 그 결과 10개 중 9개 조례가 동일한 내용으로, 사실상 서로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조례 4393개 중 기초지자체 한 곳에만 있는 조례는 300여 개에 불과했다.

이는 기초의회가 각 지역 특색을 반영한 입법 대신, 다른 구·군 조례를 ‘복붙’(복사해 붙여넣기)한 탓이다. 의회나 지자체 운영 등에 필요한 조례는 어쩔 수 없이 겹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동일한 조례가 많다. 같은 부산 내에서도 구·군마다 특색은 천차만별이다. 만일 기초의원이 다른 지자체와 똑같은 조례만 찍어낸다면 그 피해는 주민인 우리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부산 지자체 중 중복조례 비율이 가장 낮은 기장군조차 조례 10개 중 8개는 다른 구·군과 겹쳤다. 심지어 수영구는 이 중복조례 비율이 96%를 넘었다. 사실상 고유조례가 아예 없는 수준이다. 주민들이 지역 특색에 맞는 입법 서비스를 제공 받지 못하는 것이다.

통상 발의를 많이 하는 기초의회에 ‘일 잘한다’는 평가가 따라붙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발의를 많이 한 지자체 또한 중복조례투성이였다. 사하구는 민선 1기부터 지난해까지 약 3000개 조례를 발의해 부산에서 가장 많은 입법 활동을 했지만 고유조례는 18개에 불과했다.

이처럼 부산 기초의회는 조례 복제를 반복하며 손 안 대고 코를 풀어 왔지만 의정활동에 따른 급여는 꾸준히 올려 왔다. 기초의원은 의정활동비 외에도 성과급 개념의 월정수당을 받는다. 이들은 4년에 한 번 스스로 월정수당 금액을 정하는데, 성과와 무관하게 공무원 보수 인상률만큼 인상했다. 2019년부터 내년까지 4년간 부산 기초의원 182명에게 월정수당으로 나가는 세금은 200억 원이 넘는다.

이런 문제는 기초의원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었다. 가 민선 8기 부산 기초의원을 대상으로 전수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의원들은 스스로 전문성이 낮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입법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차재권 지방분권발전연구소장(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특정 지자체 1곳에만 존재하는 조례는 해당 지역 특색을 잘 살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면서 “기초의회가 이런 고유조례를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의원들의 역량을 보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혜랑·이상배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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