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뇌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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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구 고신대병원 신경과 교수

사람의 뇌는 1000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로 이뤄져 있다. 뇌신경은 정상적으로 늘 전기를 띠고, 흥분과 억제를 반복하면서 전기적 혹은 화학적 신호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다.

뇌전증은 이러한 뇌신경의 일시적인 이상흥분 현상으로 인해 ‘발작’으로 지칭되는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을 말한다. 보통 발작이 반복적으로 발생해 만성화된 상태를 ‘뇌전증’이라고 하지만, 발작이 1회만 발생했다고 해도 뇌 영상검사 등에서 뇌전증을 일으킬 수 있는 병리적 변화가 있으면 뇌전증으로 분류한다.

과거에는 ‘간질’이라는 병명으로 불렸는데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까닭에 2010년에 ‘뇌의 전기적인 이상’이라는 의미를 담은 뇌전증으로 변경됐다. 전체 인구의 0.5~1%의 유병률을 보이며, 전 세계적으로는 5000만 명, 국내에서는 약 30만 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흔히 뇌전증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눈이 돌아가며 사지가 굳어지고 간헐적으로 온몸을 떠는 현상 등을 연상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전신강직간대발작의 증상으로 뇌전증 발작의 한 종류일 뿐이며, 실제로는 하던 행동을 수초간 중단하고 멍하게 있거나, 반응이 늦고 한 팔만 흔들거나, 입맛을 쩝쩝 다시고 물건을 만지작거리는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등의 부분적 발작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증상들은 대부분 갑자기 나타나고 지속시간이 5분 내외이며, 나타날 때마다 양상이 비슷하므로 소홀히 여기지 말고 뇌전증이 의심된다면 꼭 병원을 찾아 진단받아 보기를 권한다.

뇌전증은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발작이 발생할 때마다 신경세포가 손상되면서 발작 증상 및 빈도가 점차 증가할 수 있으므로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치료 때에는 우선 항경련제를 투약해 뇌세포의 과도한 흥분을 억제하고 미약한 억제력을 강화시킴으로써 발작 발생을 막는다. 실제로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는 뇌전증 환자들의 약 70% 이상은 발작 없이 정상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할 수 있다. 나머지 20~30%의 환자도 식이치료와 시술, 수술 등을 병행하면 최대한 발작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항경련제는 처음 치료할 경우 최소 2년 이상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뇌전증은 치료를 통해 충분히 조절 가능한 질환이 됐지만, 여전히 뇌전증이 정신병·유전병이며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오해와 편견이 있다. 이런 편견이 만연하다 보니 뇌전증 환자들 역시 혹여 학업, 취업, 결혼 등에 불이익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며 질환을 숨기기도 한다. 다른 많은 질환과 마찬가지로 뇌전증 역시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를 하면 좋아지는 신경계 질환의 하나일 뿐이다. 환자에 대한 편견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질환이 정확하게 알려져, 환자들이 올바른 치료와 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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