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민 감시 국가들, ‘페가수스’로 기자 휴대전화 ‘해킹’ 충격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스파이웨어 프로그램>

이스라엘 민간 보안기업 NSO그룹의 스파이웨어 프로그램 ‘페가수스’를 이용하는 일부 국가들이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을 해킹 목표물로 삼아 공격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테러 방지 대신 반체제운동 억압에 활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워싱턴포스트(WP)와 가디언 등 전세계 16개 언론사는 국제사면위원회, 프랑스 비영리 단체 ‘포비든 스토리즈’와 함께 18일(현지시간) 스파이웨어 탐사 보도내용을 공개했다.

UAE, 헝가리, 멕시코, 인도 등
정권 부패 보도 180여 명 대상
리스트 오른 언론인 일부 ‘피살’
인권운동가·정치인 등도 포함
영국 FT “불법 감시 용납 못 해”

해킹한 휴대전화 안에 저장된 모든 정보를 빼내고, 대화도 감청할 수 있게 해주는 페가수스와 관련된 5만 개 이상의 전화번호 목록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50여개 국에서 1000여 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들 중에는 정치인과 공직자 600여 명과 인권운동가 85명, 기업 임원 65명 등이 있었다.

특히 전세계 언론인 180여 명의 전화번호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첫 여성 편집장으로 발탁된 룰라 칼라프와 프랑스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메디아파르 설립자 등 언론사 편집장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나집 라작 전 통리가 연루된 부패 의혹을 취재한 브래들리 호프 WSJ 기자 등이 목록에 대거 포함됐다.

이들 대부분은 정부에 부정적인 기사나 고위층 부패 의혹 등과 관련한 탐사보도를 해온 기자들이며, FT와 메디아파르 외에도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뉴욕타임스(NYT), 알자지라 등 전세계 주요 언론사들이 총망라됐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NSO 고객으로 알려진 국가들 중 주로 자국민을 감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랍에미리트(UAE), 아제르바이잔, 바레인, 헝가리, 인도, 카자흐스탄, 멕시코, 모로코, 르완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집중돼 있었다. 가디언은 “이들 언론인이 페가수스를 이용하는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됐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실제 해킹이 확인된 언론인 중에는 인도의 뉴스 웹사이트 ‘더 와이어’ 설립자, 정부의 부패 의혹을 파헤쳐온 모로코의 프리랜서 기자, 정부 고위층 부패를 고발해 온 아제르바이잔의 유명 탐사보도 기자 등도 포함돼 있었다.

목숨을 잃은 기자도 있다. 멕시코 프리랜서 언론인으로서 지난 2017년 3월 총격 피살된 세실리오 피네다 비르토가 감시 대상 목록에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자신의 전화번호가 페가수스 프로그램을 통해 수집된 뒤 한 달 만에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인의 가족과 지인들도 있었다. 터키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부인과 약혼녀 등 지인들 역시 페가수스 프로그램을 이용한 감시 목표물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버지니아에 거주하면서 WP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온 카슈끄지는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인 칼럼을 게재하던 중 2018년 10월 터키 주재 자국 영사관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그를 도왔던 또 다른 조력자인 전직 알자지라 기자 와다 칸파르의 휴대전화 역시 해킹당했으며, 카슈끄지 암살 사건 조사에 관련된 두 명의 터키 정부 관계자 역시 해킹 시도 리스트에 포함됐다.

FT 대변인은 “언론인들에 대한 불법적인 감시, 개입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SO는 정부 고객사들은 계약상 심각한 범죄, 테러 행위에 한해서만 자사의 스파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게 돼 있다면서 이번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일부연합뉴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