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헌법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17일은 73주년 제헌절이었다. 1948년 7월 17일 첫 제헌절에, 대통령제와 단원제 국회를 주 골자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적 대한민국헌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헌법을 만든다는 것은 공동체의 가장 중심적인 컨센스(Konsens·공감대)를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의 대표들이 법전 속에 담아내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 국민이 국가를 만들면서 지향했던 헌법정신은 헌법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식민지 시대부터 해방 후 건국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강력한 건국 의지와 염원은 공화정 체제의 입헌적 민주국가를 만들었고,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및 시장경제 질서를 근본적인 헌법 이념으로 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헌법의 근본이념은 지금도 변함없다. 변하는 건 헌법의 근본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시대에 맞춘 구체적인 정책과 입법일 뿐이다.

우리 국가가 지향하는 헌법정신
해석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냐
대권 주자는 근본이념 더 알아야

헌법해석에 시대 변화 반영 당연
국민 의사·국정 반영은 보장하되
민주적·절차적 정당성 갖춰야 해


제헌절에 여야 대권 주자들은 일제히 헌법수호 의지를 피력했다.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선출된 권력의 위정(爲政)도 항상 헌법적 정당성에 합치해야 하므로, 그들의 헌법수호 의지 표명은 중요하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수호하고 실현하겠다고 밝힌 헌법적 가치는 같지 않았던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헌법의 근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정의와 해석이 저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나 법치주의는 해석하는 자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근본적 가치다. 그래서 다를 수 있다면 그리고 달라야 한다면, 그건 자유민주주의나 법치주의를 구체화하는 내용이나 방안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헌법의 근본이념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은 그들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 할 것이다.

헌법이나 헌법해석에도 시대의 변화는 당연히 반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제헌헌법 이래로 국민들이 헌법 질서에서 반드시 수호되어야만 한다고 믿어 온 근본이념은 지켜져야 한다. 헌법의 근본이념은 일부 정치인이나 정권의 선택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국민에 의한 변경이어야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개헌 절차를 규정하면서 국민투표에 의한 확정을 개헌 구조로 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또다시 개헌을 이야기하고 있다. 헌법도 시대의 변화를 수용해서 국민의 생활 속에 살아 숨 쉬는 규범이어야 한다. 그러나 개헌은 한계를 지켜야 한다. 헌법의 규범적 기능을 높이기 위해서, 제헌 정신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의 새로운 공감대를 담아내기 위해서, 국민의 뜻대로 헌법이 정하는 절차적 과정을 준수해야 하는 이유다.

헌법의 무게를 감당할 자는 국민이라는 것을 망각하거나 간과했던 헌정사의 기억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국민을 거수기화하여 국민의 이름으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및 시장경제 질서의 헌법 이념을 의도적으로 부정했거나 그 가치들을 침훼했던 여러 번의 기억들. 그 시간을 견디면서 역사를 다잡아 오늘을 만든 우리 국민은 더 이상 ‘민주’ 정부라는 단어가 새삼스럽지 않다. 민주정부의 의미와 역할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포용하지만, 평등의 깃발 아래 자유를 희생시키거나 참여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무조건적 다수의 우위를 앞세우는 것까지 허용하지는 않는다.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것은 ‘자유 속의 평등’이고, 구성원 상호 간의 관용과 설득 과정이 전제된 다수결원칙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한목소리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던 우리 국민들의 정치사회 공간에도 확증 편향성이 팽배해 있고 이에 편승하려는 정치 세력도 적잖다. 무엇을 어떻게 묻는지에 따라 결과치가 달라지는 여론조사 결과를 국민의 의사로 간주하는 것은 눈 가린 민주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 국민의 의사 표현과 국정에의 반영은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하지만, 헌법의 근본이념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될 수 있다.

법률에 의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우리 헌법이 말하는 법치주의는 아니다. 제헌의 아버지들은 어떤 법률을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관한 법 제정의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법치를 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을 잃은 채 보여 주고 있는 독주적 여당이나 무능한 야당의 일련의 행동들도 반(反)헌법적인 정치행태가 될 수 있다.

헌법의 근본이념을 담은 헌법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73년 전 우리 민족의 약속이었던 그 중심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제헌절이 100주년 상수(上壽)를 맞이할 때, 우리 모두가 ‘잘 지켰다’는 인사를 나눌 수 있길 바란다. 지금의 우리가 제헌절 노래 가사를 잊었듯 우리 민족의 새로운 길을 시작하면서 약속했던 제헌의 정신과 의미마저도 망각해 가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