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산에 남은 취준생 후배 C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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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사회부 행정팀장

얼마 전이었어. 부산시 고위 관계자 여럿이 내 앞에서 한참이나 매서운 비난을 쏟아내더라. 부산시장에게 ‘휴대폰 문자’만 남기고 부산을 버린 KT농구단을 향한 것이었지. 대기업 KT가 부산을 어떻게 보고 그런 무자비한 방식으로 ‘야반도주’할 수 있느냐고.

‘부산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막상 생각해보니,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더라. 떠난 버스에 대고 소리 질러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미리 소통하지 못했다는 질타를 받은 부산시는 뒤늦게 스포츠산업 혁신 계획을 준비 중이기는 해. 그런데 잠시 들끓던 시민의 목소리가 어느새 조용해진 것 같아. KT가 부산에 한 일을 영원히 기억해야 할 텐데 말이야.

KT농구단 떠나고 이건희 기증관은 서울에
코로나19 희망고문 청년 삶 ‘지옥’ 그 자체
부울경 기성세대 물려준 건 부담·무기력뿐
무관심 딛고 기억하고 행동해야 희망 싹터

이건희 기증관 사태는 또 어떻고. 황희 문체부 장관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서울 후보지 두 곳을 보란 듯이 발표했어. 전국 지자체들이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위한 공모를 기대했는데, 떡잎부터 싹둑 잘라 버린 게지. ‘지방 도시’쯤이야 발버둥쳐도 뒤탈이 없을 거라 판단한 것 같아.

훈련과 경기에 편한 수원으로 간 KT농구단이나, 서울 출신 정치인 장관의 가이드라인 따라 서울에 못박힌 이건희 기증관이나, 처음부터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인 수도권 일극주의의 민낯이야.

코로나19 상황을 한 번 보자고. 7월 19일 0시를 기준으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서울은 5만 8646명, 경기도는 5만 694명, 인천은 7913명이야. 전체 확진자 17만 9203명의 65.4%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해. 발생 초기에 대구를 봉쇄하자느니 난리를 치더니 수도권에서 창궐하니 당연한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잖아. 지난 18일 정부는 비수도권 사적 모임을 일방적으로 4인까지 제한했어. 어떻게 보면 수도권 확산의 뒷감당을 지역이 하지 않나 싶어.

10년쯤 전인가? 어느 존경 받는 판사님이 내게 말씀하시더군. “부울경 사람들은 정말 착한 것 같아요. 원전은 죄다 동해안에 있고, 송전선로와 송전탑이 영남 산천을 찢어놓아서 소송이 빗발치는데 말이죠. 만에 하나 한강, 인천 앞바다에 원전 짓고 송전선 깔겠다고 하면 그들은 어떻게 대응할까요?”

넌 힘들게 비싼 사교육 받아 가며 입시 지옥 헤치고 대학에 갔지. 비싼 등록금 내면서 공부해 스펙 쌓았더니, 널 기다린 건 ‘취업 지옥’.

얼마 전 만난 분에게 물었어. 서울에 살다 부산 와보니 어떠냐고. 30년 전 고교 졸업하고 부산을 떠난 분이었지. 한마디로 돈이 없대. 그래서 사람들이 떠나는 것 같고, 자기도 올 것 같지 않다고. 당연한 이야기겠지. 슬프게도 경제력은 수도권 집중 현상이 극단적인 상황이니까.

30년 전, 사실 나는 2021년쯤 부산 청년들은 나랑 다른 삶을 살 줄 알았어. 영화 속 2021년은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세상이었으니까. 웬걸, 너희들은 그때보다 훨씬 힘든 세상을 만난 것 같아. 아직 의무 군 복무에, 통일은 언감생심이며,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어. 삶은 더 팍팍해졌고, 웬만한 ‘금수저’ 아니면 신혼부부가 집을 사기 힘든 세상이야. 얼마 전 후배가 쓴 기획 기사를 보고 정말 놀랐어.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첫 번째 갈등 요인으로 너희 세대는 젠더 이슈를 꼽았다는 거야. 열악하고 처절한 상황 속에서, 요즘 치닫는 젠더 갈등을 보면 한없이 마음이 착잡해.

기성세대로서 이렇게 말하기에 염치 없지만, 너희 세대도 무관심을 버리고 일어서야 해. 지금 무서운 적은 ‘수도권 일극주의’이지만, 그보다 더 최악은 바로 ‘무관심’이야. 자기가 무시 당하는지, 양말 속옷까지 다 빼앗기는지도 모르고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은 뭘까. 너희를 그렇게 만든 기성 세대의 책임이 정말 큰 것 같아.

돈이 없다면 돈이 오도록 해야 하고, 사람이 떠나면 돌아오도록 만들어야 하겠지. 지금은 이 당연한 반전 드라마를 써내려 갈 에너지가 절실해. 이번에 30대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당선된 건 그런 에너지의 신호탄일까?

내년 상반기에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잇따라 열려. 미래가 달린 일에 너희들이 나서주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혁신과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아.

언젠가 가덕신공항에서 비행기가 떠오르고 2030부산엑스포 개막 팡파르가 울려 퍼질 때, 그 주인공은 부울경 청년들일 거야. 힘들겠지만, 무관심을 딛고 너희 세대가 지금 똘똘 뭉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 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도 파이팅!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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