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문 대통령 SNS 셀프 정정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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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김홍빈 대장의 안타까운 실종 소식 때문에 다들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짚을 건 짚어야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원정대장이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고봉(高峰) 14개를 모두 등정하는데 성공했다며 SNS(사회관계망 서비스)로 축하메시지를 냈다. 문 대통령은 “어제(18일) 정상 등반을 축하하고 싶었지만, 하산 중에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전언에 걱정이 컸습니다. 이탈리아 등반대의 도움으로 캠프에 잘 도착했다고 하니 마음이 놓입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 또 하나의 자랑과 희망을 주셨다”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이 시간이 오후 7시 30분이었다.

문 대통령, 등반 성공 축하메시지 내자
두 시간도 안 돼 김홍빈 대장 실종소식
자랑할 일은 SNS에 대대적 홍보하면서
안 좋은 일 생기면 불통의 그늘로 숨어

하지만 불과 두 시간도 채되지 않은 오후 9시 17분 실종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산악연맹 측은 “현지에 있던 해외 등반대가 구조에 나섰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국내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전했다. 결국 문 대통령은 ‘김홍빈 대장이 캠프에 잘 도착했다’는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성급하게 축하 메시지를 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잘못된 정보를 대통령에게 전한 청와대 참모의 실수가 직접적인 요인이지만, 이번 해프닝을 단순한 실수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대통령이 보고받는 정보는 해당 비서관실이나 국정상황실에서 생산돼 수석, 비서실장(또는 안보실장)까지 거치면서 여러 단계의 검증과 팩트 재확인이 요구된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팩트 확인을 해보았더라면 막을 수 있는 실수였다.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상당수의 정보가 이처럼 팩트부터 틀린 것 아니냐”, “만일 이번 일이 국가 안보나 국민 안전과 관련한 사안이었으면 어쩔 뻔했느냐”는 이야기가 들린다.

실제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는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언론보도와 관계기관의 초기 보고를 믿고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화를 키웠다.

또 산악연맹은 ‘해외 등반대가 구조에 나섰다’고 했는데, 문 대통령은 ‘이탈리아 등반대’라고 적시할 정도로 나름대로 세부적인 사항까지 보고를 받고 있었다는 점도 의문이다. 대통령에게 올리는 보고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문 대통령의 SNS가 소통 보다는 대부분 ‘홍보’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꼽힌다.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에 따른 불만, 청해부대 장병들의 대규모 감염, 백신 접종 예약 시스템 불통 등 짜증나는 이슈에 속타는 국민들에게 뭔가 ‘시원한’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전하고자하는 조급함이 이번 축하메시지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문 대통령은 다음 날인 20일 오전 다시 SNS에 메시지를 올렸다. “등정 성공 후 하산 중에 연락이 두절됐다는 소식에 가슴을 졸이다, 구조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기쁜 나머지 글을 올렸는데 다시 사고가 발생한 것 같다”면서 축하 메시지가 나온 경위를 해명했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자신이 올린 SNS를 스스로 정정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궂은 일 보다는 내세우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최근 문 대통령의 SNS 메시지를 보면 △한국판 뉴딜 1주년 성과 홍보(7월 14일) △유엔무역개발회의의 우리나라 선진국 그룹 변경(7월 6일) △풍산개 곰이·마루의 새끼 출산(7월 3일) △자치경찰제 시행(7월 1일) △오스트리아 총리의 시베리아 호랑이 후원자 지정(6월 21일) △유엔 사무총장 재선 축하(6월 20일)등이 있었다. 문 대통령이 자랑할 일이 있을 때만 SNS 메시지를 내고, 안 좋은 일에는 숨어버린다는 세간의 푸념이 나오는 근거다.

김홍빈 대장이 실종된 19일은 청해부대원들이 집단감염 때문에 군함를 두고 귀국하는 사태가 벌어진 날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이날 SNS를 통해 청해부대 사태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고 장병들의 부모와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날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군통수권자로서 청해부대 사태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국방부에서 적극적으로 조치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면서 “국방부는 장병들의 신속한 치료와 안전한 귀국을 위해 가용한 모든 대책을 강구하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남의 일 이야기하듯 답변했다.

소통만 잘해도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SNS가 홍보 보다는 소통을 위해 활용된다면 적어도 그 따뜻한 인간미는 느낄수 있을 것이다.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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