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작은 것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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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독자부장

‘작아’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잡지가 있다. 오래전 환경단체 정기 후원을 하니 잡지가 덤으로 와서 재미있게 읽었다. 요즘도 책이 나오는지 알아보니 1996년 창간 이후 계속 내고 있단다. 우리나라 최초 생태환경문화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다. 지구별 푸른 소식과 지구를 살리는 초록빛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라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소개해 놓았다.

잡초라며 이름 갖지 못한 작은 존재
하찮더라도 생명의 무게는 똑같아
세속적인 이는 큰 덩치만 좋아해도
작아도 예쁜 사연이 좋은 세상 가꿔

‘작아’ 책에서 본 내용으로 기억한다. 물론 기억은 종종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뒹굴어 섞여버리니 정확하지 않을 수가 있다.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가 정확한지도 자신할 수가 없는 ‘새에게도 무게가 있다’는 명제다. 작은 새이지만, 덩치가 큰 동물과 비교해도 그 생명의 무게가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으로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다. 나태주 시인이 흔하디흔한 풀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권정생 작가는 하잘것없는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을 피우는 고결함을 이야기했다. 철학 교수 출신의 농사꾼 윤구병 선생은 세상에 ‘잡초는 없다’라는 책으로 이름이 불리지 않는 존재의 가치를 북돋웠다. 비록 존재가 작아도 귀하다는 뜻이다.

지극히 자잘해서 어쩌면 찌질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출근길은 자동차로 약 35~40분가량 걸린다. 조금 바쁜 아침은, 시간을 단축해 30분이면 출근할 수 있는 우회로를 정말 가끔 이용한다. ‘정말 가끔’인 것은 평상시 출근길보다 드는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보통은 금정구에서 무료인 도시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우회로는 산성터널과 백양터널, 수정터널을 통과하는 코스라 유료도로 천국 부산의 정수를 제대로 느낀다. 물론 출근 시간대라도 거짓말처럼 길이 잘 뚫린다.

막힘 없는 강변대로(서울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 못지않다). 널찍한 길과 신호등이 거의 없는 덕분에 운전도 매우 편하다. 그런데 이곳에 늘 눈을 찌푸리게 하는 복병이 존재한다. 바로 무단 투기한 쓰레기다. 이 쓰레기는 도로와 도로를 연결하는 굽은 고가도로에서 불쑥 나타난다. 어떨 때는 바퀴에 깔려 내용물이 바닥에 펼쳐져 있다. 운전자가 집이나 직장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차를 타고 가다가 의도적으로 버린 게 분명하다. 누군가 이 쓰레기를 치우겠지만, 대부분의 쓰레기 봉지는 수많은 차의 바퀴에 의해 자연 소멸하는 것 같다.

멋지고 빠르고 편한 출근길에서 매번 이 장면을 맞닥뜨리는 것은 불쾌하다. 해결 방안도 생각했다. ‘구청이나 부산시에 민원을 내볼까. 사회부에 제보해 기사로 써달라기엔 너무 동네 기산가?’ 하지만 생각에만 머물고 행동은 굼뜬 그때, 부산 동구청에서 온 보도자료가 눈에 번쩍 띄었다.

이상욱 부산 동구의회 의원이 지난 21일 열린 제297회 동구의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쓰레기무단투기 이동식 감시카메라 보급’과 관련된 주제로 5분 발언한 내용이다. 이 의원은 (동구에) 매년 쓰레기 투기가 느는데 적발 과태료는 감소한다며 기존 고정식 감시카메라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특히 “태양열 충전 동작감지형 수레식 감시카메라를 동마다 4대씩 보급하고 통장이나 주민이 적정 장소 조사 후 배치하는 ‘주민 주도형 시스템’을 운영하자”며 관리 조례 제정을 제안했다. 강변대로에도 적용하면 좋겠다.

굳이 거대 담론이 아니면 어떤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이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작은 일에는 아예 무감해지는 수가 있다. 사소한 거짓말도 그렇다. 최근 한 대선후보가 검사 시절에 지인에게 변호사를 소개했다, 안 했다 논란이 있었다. 뭐 큰 문제일까 싶었는데, 검찰직이나 경찰직 공무원은 변호사를 사인에게 소개하면 안 되는 변호사법이 엄중함을 알았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는 다른 국민들과의 형평성 때문이라는 게 법 취지다. 만에 하나 대선후보의 거짓말이라면, 사소하지만 그 사안은 절대 작지 않다.

아무리 하찮고 작아도 그 가치가 덩치 큰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은 저마다 지닌 삶의 가치가 모두 소중하기 때문이다. 매일 독자부 책상으로 쏟아지는 보도자료 중에 비록 덩치는 작지만 아름다운 사연이 담겼다면 귀하게 여길 테다. 최근 스무 살 젊은이가 취업 첫 해 월급을 모아 100만 원을 모교인 해사고에 기부했다. 이 청년은 "나이가 들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 혹 마음이 바뀔 수도 있어 후배들에게 우선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고 당차게 말했다. 한 항만 노동자는 중간정산한 거액의 퇴직금을 부산사랑의열매에 기부하고, 매년 적금을 들어서 내겠다며 1억 원 기부를 약정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이나, 덩치가 큰 단체의 사회공헌은 나름의 의미가 분명하지만, 비록 적은 금액일지라도 어렵게 용기를 내 기부하는 이들의 작은 사연은 그 무엇보다 더욱더 위대하다.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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