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유니폼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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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럽다. 벌금은 내가 대신 내 줄 게. 계속 싸워 달라.” 미국의 유명 팝가수 핑크가 26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이런 내막이 있다. 노르웨이 여자 비치 핸드볼 팀이 지난주 유럽 선수권대회에서 민소매 셔츠에 헐렁한 반바지를 입고 출전했다. 노출이 심한 비키니를 입는 기존 관행을 깬 것이다. 그런데 ‘의복 규정 위반’을 이유로 200만 원의 벌금을 맞았다. 핑크가 여기에 발끈했다. “유럽핸드볼연맹이야말로 성차별적 처사에 벌금을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 팔로어가 3160만 명에 달하는 그의 트위터는 지금 응원의 메시지로 가득하다.

스포츠 의상의 성적 대상화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체조나 수영, 비치발리볼, 육상 같은 종목에서 여자 선수들의 유니폼은 유난히 노출이 심하다. 불법 촬영의 대상이 돼 논란이 빚어진 적도 여러 차례다. 여자 선수를 ‘선수’로 보지 않고 ‘여자’로 보기 때문이다. 스포츠 분야에서 여자 선수는 아름답다 혹은 섹시하다 같은 외적 요소로 판단되기 일쑤다. 이 같은 남성 중심적 시각을 바탕으로 스포츠 세계 안에는 수많은 성적 불평등이 존재한다. 올림픽도 예외는 아니다. ‘성적 매력 아닌 스포츠의 호소력(sport appeal, not sex appeal)!’ 올림픽 관계자들이 성 평등을 위해 추구하는 이 격언이 그런 현실을 가감 없이 방증한다.

지금 도쿄올림픽에서는 기존의 편견과 관행에 저항하는 몸짓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임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남자들처럼 발목 끝까지 전신을 가리는 ‘유니타드’ 의상이었다. 성적인 대상으로 비치는 걸 막기 위해 선수들 스스로 결정한 선택이라고 한다. 물론 독일체조연맹이 그 뜻을 전격 수용한 결과다. “다른 나라 어린 선수들이 우리 의상을 보고 용기를 내서 입길 바란다.”

그런데 다른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영국의 한 여자 육상 선수는 자신이 착용한 팬츠가 너무 짧고 노출이 심하다는 지적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단지 편한 걸 원한다. 최대한 가볍고 활동적인 게 좋다. 선수가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권리는 없나?” 결국 같은 얘기다. 여자 선수를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오랜 편견을 걷어 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무엇을 입든 스스로 결정하도록 선수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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