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염 속 화마와 사투 소방관 방화복 착용하자 체온 46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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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안전센터 출동 동행해 보니

화재신고를 받은 기자는 28일 5kg 무게의 두꺼운 방화복을 입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소방차에 탑승했다. 방화복을 입은 뒤 열감지기를 몸에 갖다댔더니 46도가 찍혔다.

“그나마 그게 얇은 옷이에요. 하하!”

지난 28일 오후 1시 부산 사상구 모라119안전센터. 30도를 훌쩍 넘은 뙤약볕에 안전센터 앞 아스팔트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우리는 누빔으로 된 방화복을 입는데, 더울까 봐 일부러 얇은 걸로 드렸어요.” 30년 베테랑인 모라119 안전센터 고영수 팀장이 너스레를 떨며 방화복과 헬멧, 장화를 건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는 방화복
20kg 장비 무장하자 숨이 턱턱
출동 후 땀 식힐 새 없이 또 출동
“더 두렵고 위험한 건 트라우마”

방화복을 받는 순간 양팔이 툭, 떨어졌다. 무게만 5kg는 족히 넘는 듯한 방화복은 얼핏 보기에도 두툼했다. 불길을 막기 위한 특수소재로 한 겹, 열기를 막기 위한 누빔으로 또 한 겹 덧댄 탓이다. 불길을 뚫고 들어가려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빈틈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불길을 막는 방화복은 갑옷처럼 무거웠다. 장화는 기자의 무릎 아래까지 덮었다.

기자가 낯선 방화복을 몸에 걸치는 데 10분 넘게 걸렸다. 머리를 둘러싸는 두건과 헬멧은 스스로 쓰지도 못했다. 출동은커녕 방화복만 입었을 뿐인데, 벌써 등은 땀으로 흥건했다. 방화복 무게에 익숙해질 즈음, 119 신고가 들어왔다. ‘주택 방의 콘센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화재 신고였다.

급히 다섯 명의 소방관과 함께 소방차에 올랐다. 두꺼운 옷을 입어 둔탁해진 몸으로는 높은 차에 올라타기도 쉽지 않았다. 안전대를 잡고 소방차에 올라타자마자 고 팀장은 기자에게 머리부터 목을 감싸는 두건을 뒤집어 입혔다. 그 위에 얼굴을 가리는 방독면과 헬멧까지 썼다.

무려 15분 만의 ‘완전 무장’. 몸에 얹은 장비만 20kg였다. 방화복을 입고 10분 뒤 측정한 체온은 무려 46도. 숨쉬기가 버거웠다. 기자를 포함해 세 명이 들어앉은 소방차 내부는 옆자리를 돌아볼 틈도 없이 꽉찼다. 에어컨을 틀었지만, 완전무장한 몸 안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방화 헬멧 밖으로 불안한 눈빛을 연신 보내는 기자와 달리 소방관들은 차 안에서 단 2분 만에 방화복을 걸쳤다. 소방차가 시동을 거는 동시에 이미 ‘완전무장’을 마친 상태였다. 소방차 운전석에 매달린 무전기에서는 쉴 새 없이 현장 상황이 전파됐다. 소방차 한쪽에 ‘타오르는 불길 사이를 뚫고 들어갈 때, 불꽃은 너를 태우지도, 사르게 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방화복 무장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현장에 도착하자 “좀 무겁습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고 팀장이 집채만 한 산소통을 등에 매어주었다. 예상치 못한 무게에 등이 휘청하고 꺾였다. 산소통 무게는 11kg. 화재 속에서 50분 동안 산소를 공급해 주는 소방관들의 생명줄이다. 산소통에 매달린 또 다른 호흡기는 화재 속 구조자를 위한 장비다. 50분간의 산소는 소방관 한 명뿐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을 살릴 숨인 셈이다.

힘겨운 걸음을 떼고 화재 신고가 들어온 현장의 현관문을 열었다. 겁먹은 신고자의 얼굴이 보였다. 신고자는 “갑자기 ‘퍽’ 소리가 나면서 콘센트에서 불꽃이 튀었다”고 말했다. 소방관들은 콘센트부터 차단기까지 꼼꼼히 살폈다. 다행히 번지지 않고 자체 진화된 상황이었다. 소방관들은 10여 분간 점검을 마친 뒤 집을 나섰다. 방독면 속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식힐 겨를은 없었다. 급히 소방차에 올라 안전센터로 복귀했다. 또 다른 신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화재 발생, 화재 발생!’ 돌아와서 기자가 한숨 돌리기 무섭게 또 다른 신고가 들어왔다. 고 팀장과 소방관들은 다시 소방차에 올랐다. 벗으려던 헬멧과 두건은 도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퇴직 소방관의 평균 수명은 58세다. 현장으로 향하던 고 팀장은 육체적 어려움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더 두렵다고 했다. 고 팀장은 “화재 현장에서 본 팔다리 훼손되고 압착된 시신들, 살려 달라는 목소리가 잔상처럼 남아 있다”며 “여기 소방관들은 저마다 트라우마 하나씩 다 있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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