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축소도시’ 부산 해법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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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유출 막을 댐, ‘부울경 메가시티’가 답이다

부산시가 지난달 발표한 ‘제1차 부산시 인구정책 기본 계획’은 두고두고 의미를 곱씹을 만했다. 2025년까지 3조 56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점도 물론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부산시가 드디어 인구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인구정책 하면 기본적으로 나오던 목표 인구수도 이번엔 제시하지 않았다. 금기로 여겨졌던 ‘축소사회(도시)’라는 개념이 전면에 등장해서다. 그동안에는 도시의 외연 확장이 곧 지자체장의 능력으로 인정되었다. 부산시는 그걸 포기하고 현실로 다가온 축소사회에 대비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부산은 축소도시라는 부인하고 싶은 현실을 왜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까. 또 부산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어떤 방향인지 고민해 본다.

빈집, 특광역시 중 최다
노령화 지수 전국 최상위
청년 거센 탈부산 바람에
수도권 유출 한 해 7000명
부산시도 외연 확장 접고
시민 삶 높이는 데 주력
인구정책 패러다임 전환

집도 사람도 수도권 쏠림
국토균형발전 사실상 실패
메가시티로 지방소멸 막고
청년들 함께 일하고 즐길
매력적 도시 거점 만들어야




인구는 줄고 빈집은 늘어

‘축소도시’란 1980년대 독일학계에서 나온 개념으로 인구가 줄면서 방치되는 부동산이 증가하는 도시다. 과거 서독으로 급격한 인구 유출을 경험한 독일 드레스덴이나, 미국 자동차 산업 쇠퇴로 몰락한 디트로이트가 대표적 축소도시로 꼽힌다. 지난달 에 실린 기사들은 부산이 축소도시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먼저 올 상반기에 부산 인구 1만 92명이 타 시·도로 순유출되었다는 소식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급감했던 지난해 상반기보다 인구 순유출이 87.7%나 다시 급증하면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트렌드로 자리 잡았음을 일깨워 주었다. 지난 1~5월 부산의 출생아는 6336명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5.4% 감소했다. 5월 조출생률(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도 4.3에 불과해 전북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낮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산의 빈집은 2019년 11만호에서 2020년 11만 3000호로 증가했다. 지은 지 30년 이상 된 빈집, 사실상 버려진 주택도 3만 5000호로 특광역시 중에서 가장 많았다. 30년이 지난 주택은 부산 전체 주택의 24.1%인 30만 7000호나 되었다. 부산의 유소년(0~14세) 인구는 10.8%, 65세 이상 인구는 19.3%다. 노령화지수가 179.4로 강원·전북 등 농촌이 많은 도 지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부산에서 고령자만 살고 있는 가구는 16.8%, 고령자 1인만 있는 가구도 9.7%에 달했다. 부산은 인구는 줄면서 고령화되고, 집은 노후화되는 속도가 타 도시보다 너무 빨랐다. 부산은 안타깝게도 축소도시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삶의 질 높이는 기회로

인구감소 중인 도시도 향후 계획을 수립할 때는 달성 불가능한 인구 수치를 내놓는다. 도시 축소 현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부산도 그랬다. 축소도시가 인구를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재원을 쏟아 넣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 중소도시 간 ‘제로섬 게임’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같은 원도심에서도 재개발·재건축이 활발한 부산 동구와 영도구의 인구가 최근 증가한 반면, 중구는 인구 감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역시 원도심의 제로섬 게임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저성장과 인구감소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인구 증가에 주력하는 대신 시민의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축소도시 시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이다. 인구감소와 저성장이 고착화한 현실에서 무리한 도시 확장은 지자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인프라 건설에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고, 유지하는 데도 큰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축소도시에는 이전엔 없던 다양한 기회가 생긴다. 인구과밀로 질이 떨어졌던 도시의 주거 여건이 개선되고, 집값 상승 문제도 수요 부족으로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다. 자연 친화적인 공간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다는 것도 강점이다. 축소도시 개념을 국내에 처음 들여온 이희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도시 내 유휴지를 공동 텃밭으로 전환하는 미국 클리블랜드 예를 들며 “비어 가는 도시를 채우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비움으로써 자연과 조화하는 해결책도 있다”고 말했다. 국토연구원은 국내 축소도시가 달성해야 할 정책과제로 △인구에 맞는 도시 규모 축소(적정 규모화) △소멸 위기의 근린지역 안정화(근린 안정화) △공공서비스 효율적 공급(서비스 효율화)을 꼽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인 축소도시는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전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인구 유출 막을 ‘댐’ 시급

올 상반기 부산에서 서울로 빠져나간 숫자는 3713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경기도로 3200명이었다. 서울·경기도·인천을 합한 수도권으로의 유출은 7130명이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사람들에게 인구 감소 문제가 그다지 실감 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부울경에 이어 대구경북, 충청, 호남에서 메가시티 논의가 한창이다. 그런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수도권에서는 다시 경기도 분도(分道) 이야기가 나오니 그야말로 딴 세상이라고 하겠다. 지방의 인구가 소멸하면 서울로 유입되는 인구도 사라진다. 대한민국이 쇠퇴하는 길이다.

축소도시 부산을 인정하더라도 청년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인적 흐름은 바꿔야 하는 이유다. 일본도 ‘극점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도쿄 일극 집중이 극심하다. 의 저자 마스다 히로야는 “지방의 인구 유출을 멈출 ‘댐 기능’을 재구축하고, 대도시로 떠난 젊은이들을 지방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수도권의 흐름은 다르게 느껴진다. 정부가 ‘지방소멸대응양여금’을 새로 만들어 내년부터 10년간 매년 총 1조 원을 광역지자체에 나눠 주기로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지방소멸대응양여금 교부 대상 광역지자체를 비수도권에만 한정하지 않은 것은 무슨 꿍꿍이속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대선 유력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88% 이하 지급으로 결정된 재난지원금을 경기도민에 한해 나머지 12%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수도권에 모든 자원이 몰려 상대적으로 경기도가 돈이 많아 가능한 일이다. 안 그래도 수도권과 지방의 각종 격차가 커지고 있다. 아니꼬우면 수도권에 와서 살라는 시그널을 줘서 될 일인가 싶다. 서울의 출산율은 0.67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인구의 블랙홀 현상만은 막아야 한다.



축소도시에서 메가시티로

앞서 소개한 의 대담편에서 뜻밖에 인상 깊었던 대목을 만났다. 스다 요시아키 오나가와 정장이 “‘균형 잡힌 국토 발전’이라는 표어를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평등주의적 균형 같은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이다(‘매력 있는 거점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현재 여야 대선 유력 후보들은 비수도권에 대한 마인드가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 전임 정부가 추진하다 실패한 국토균형발전을 과연 국가 주요 정책으로 채택할 것인가….

부산시는 향후 10년이 부산 인구 위기 극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지방 도시의 지속 가능성은 젊은이에게 매력적인 지역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지금이라도 부산시가 외국인과 다문화 가족·1인 가구 등을 껴안고, 청년 성장 지원에 집중하는 균형과 포용 중심의 인구 정책으로 전환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지방의 인구 유출을 멈출 댐, 바로 부울경 메가시티를 공고히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청년이 찾아오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부울경 메가시티가 필요하다. 메가시티는 수도권 일극주의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다. 부산, 나아가 한국이 소멸하지 않기 위해 대선 과정을 통해 메가시티의 추진동력을 확실하게 확보해야겠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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