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파업 기로 HMM, 항해는 계속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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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영 경제부 해양수산팀장

‘주 7일 해외 근무. 일일 근로시간 12시간. 퇴근 없고 주휴수당 없음. 육상에 있는 가족, 친지 등과 연락 어려움. 근무지 이탈 불가로 병원 방문 어려움. 근무 기간 자동연장으로 언제 귀국할지 알 수 없음. 귀국 후에도 회사가 필요하면 다시 출국해야 함. 기자님이라면 이런 환경에서 근무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HMM(옛 현대상선) 해상노조가 최근 기자들에게 보내온 이메일 내용을 일부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 노조는 2021년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과의 입장 차가 너무 크다 보니 파업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거론되고 있다.

물류대란 속 중소기업 지원 앞장
국적선사 역할 큰데 임단협 난항
MSC, 2.5배 임금 제시 업계 화제
선원 유출 막으려면 처우 개선을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인 선복 부족으로 인한 해운대란이 심각한 상황이다. 수출화물을 실을 배가 모자라 부산항 신항에는 컨테이너가 6단 높이까지 쌓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제 회복 여파로 수출은 활황이다. 우리나라의 올 7월 수출액은 554억 4000만 달러로, 무역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56년 이후 6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올 1~7월 누계 수출액(3587억 달러)도 역대 1위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중견기업들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한 임시선박 투입에 앞장서 온 국적선사 HMM이 파업에 들어간다면? 물류대란을 넘어서 수출 마비마저 우려된다. 업계가 HMM 노사의 협상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HMM 해상노조에 따르면 선원들은 월 209시간 근무, 104시간의 고정 초과근무를 기준으로 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노조가 7월 한 달간 일항사의 실제 근무시간을 조사한 결과 초과근무가 156.5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50여 시간을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시간만 제대로 반영해도 급여의 15%에 해당하는 140만 원 안팎이 더 지급돼야 한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여기에 현재 미지급 중인 주휴수당에 대한 정당한 지급만 이뤄져도 임금 15% 인상이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다.

해운업계가 극심한 불황을 겪었던 2010년대 HMM 선원은 6년, 사무직 직원은 8년간 임금을 동결하며 경영 정상화에 협조했다. 이 때문에 HMM 평균 연봉은 동종 업계보다 1000만∼2000만 원가량 낮다.

노조 측은 급여 정상화를 요구하며 임금 25% 인상, 성과급 1200% 지급안을 내놓았다. 반면 사측은 임금 5.5% 인상, 격려금 100% 지급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시황이 받쳐 준다면, 연말에 100% 범위 내에서 추가 격려금 지급을 노조와 협의할 수 있다는 단서도 달았다. 사측은 해운재건을 위해 3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아직 부채를 다 갚지도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채권단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HMM은 올 1분기 영업이익 1조 193억 원을 기록했다. 2분기에도 1조 4000억 원대 영업이익 달성이 전망된다. 증권가에서는 HMM이 올해 총 5조 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결실을 그동안 희생을 감내해 온 직원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노조의 입장이다.

당장 HMM 선원들은 먹을 물을 걱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결정하는 등 해수 오염이 우려되자 사측은 생수를 사먹으라고 하고 있지만, 현재 식비 5000원에서 생수 구입비까지 감당하기는 벅차다는 게 선원들의 호소다. 현재 배안에서는 조수기를 통해 해수를 식수로 전환해 사용 중이다. 이런 가운데 스위스 선사인 MSC가 얼마 전 한국인 선원들에게 약 2.5배의 임금을 제시하며 구인에 나서 화제가 됐다. ‘대형 컨테이너선 경력자’를 모집 조건으로 내세워 HMM 선원을 겨냥한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왔다. 실제로 구인을 담당한 회사 관계자는 문의 전화를 한 선원에게 “HMM 직원이냐”고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해운업계는 선원 유출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HMM의 인건비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주장도 나온다. MSC와 세계 선사 1, 2위를 다투는 덴마크의 머스크는 인건비가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9%인 반면, HMM의 경우 1.6%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HMM이 이번에 임금을 25% 인상한다 해도 그 비율은 1.9%에 그칠 것이라는 게 노조의 계산이다.

전정근 HMM 해원연합노조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선원은 떠나고 배만 남은 해운재건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HMM 노사가 조속히 합리적인 합의안을 찾고, 수출업계가 겪고 있는 물류난 해소에 더 큰 힘이 돼 주기를 바란다. 항해는 계속돼야 한다.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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