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반려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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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소설가

대부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관계의 숫자를 정해주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은 참다가 이제는 적응을 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음식을 먹고 여행을 떠나는 일을 이제 더 이상 일상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방학과 함께 우리의 일상은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더욱 국한되고 폐쇄되고 있다. 그런 중에도 감사한 일은 모두가 아프지 않은 일 정도다.

아침마다 하는 일과 중 하나는 화분에 물 주기다. 체리 세이지와 무화과나무는 무더위에 잎이 축축 늘어지기 일쑤다. 지난주에는 도서관에 갔다가 거북알로카시아 화분을 사서 돌아왔다. 그전에는 몬스테라 화분을 안고 폭염을 걸었다. 사고 싶은 식물 목록이 자꾸만 늘어간다. 나는 어느새 식물에게서 위로를 받고 애정을 쏟는 사람이 되고 있다. 친구들과의 통화에서 내가 키우는 식물들에 관해 얘기할 때면 그들은 너도 반려 식물 키우는구나, 요즘 그런 사람들 많아, 라고 했다.

코로나로 집에서 시간 보내며
화분 식물과 친해져 애정 쏟아
물만 줘도 새 잎과 꽃으로 보답

지나치게 물 뿌려 썩는 것 있어
사랑만큼 무관심도 필요한 법
적당한 사랑은 항상 어려운 일

사전에서 반려는 짝이 되는 동무를 말하는 명사로 정의된다. 예문으로는 인생의 반려가 되다, 당신이 내 인생의 반려가 되어 주지 않으면 내게는 오직 암흑이 있을 뿐입니다, 등의 오글거리는 것들이 나온다.

식물이 내게? 의문이 든다. 나는 기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건 내게 온 식물들이 하나같이 그 끝이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우리 집에 온 식물들은 한두 달 내에 ‘과습’이나 물 부족으로 죽었다. 어떻게 동시에 같은 애정에 상반된 이유,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늘 의문이었다. 식물을 키우며 알게 된 사실은 과습이나 물 부족은 모든 식물 초보자들이 겪는 혼란이라는 점이다. 식물을 산다 - 식물을 본다 - 식물에게 물을 준다, 로 요약될 수 있는 초보 식물 생활(분갈이, 가지치기, 벌레퇴치, 비료 주기는 아직 멀다.)에서 내가 가장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행위는 물 주기다. 물 주기가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나 싶게 나는 매일 아침 온갖 화분에 물을 뿌려댄다. 어떤 식물들은 물만 주는데도 잘 큰다. 진초록의 싱싱한 잎사귀와 꽃에 대한 보답으로 물이면 되다니, 이 얼마나 쉬운 애정 생활인가 싶다. 반려동물과 비교해도 확실히 경제적, 육체적 소모가 덜하다.

물 주기의 즐거움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새 발을 내던 쥐꼬리선인장이 노랗게 물러지더니 끝이 검게 썩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쥐꼬리선인장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물을 주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내가 쉽게 생각했던 물이면 된다는 식물 키우기에서 물 주기는 섬세하고 까다롭고 모든 걸 고려해야 하는 일이 됐다. 식물마다 필요한 물과 햇빛의 양은 모두 다르다. 물은 식물 고유의 성질과 계절과 날씨, 화분의 크기, 영양 등에 따라 달라져야 했다. 물을 많이 준다고 애정이 많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쉬운 관계나 쉬운 애정은 없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가족들과 다툼이 잦아진단다. 우리 가족도 별수 없어서 그럴 때 나는 진은영 시인의 ‘가족’이라는 시를 떠올린다.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는 문장. 몇 년 전 내가 이 문장을 말하자 내 절친은 원래 그런 거야, 오죽하면 누가 안 보면 몰래 갖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 하겠니, 라고 해맑게 말했다. 이제 그녀는 양가 부모님들을 위해 매주 아주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을 만드는 여자가 됐다. 나는 내 손으로는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식물을 사 모으는 여자가 됐다.

우리는 누구를 반려 삼아 코로나 시대를 건너가야 할까? 어떤 식물은 그늘을 사랑하고 어떤 식물은 무관심을 원한다. 식물을 키우는 일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랑하는 일은 늘 어렵다. 어렵지만 우리가 늘 하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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