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투구게야 미안해!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효정 라이프부장

지난 4일,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2억 명을 넘었다. 올해 1월 26일 1억 명을 돌파한 데 이어 6개월여 만에 1억 명의 환자가 더 추가된 셈이니, 코로나의 위세는 무섭기만 하다.

현재까지 코로나19와 싸우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백신이다. 가능한 많은 백신을 확보하고 빠른 시간 내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나라별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구해 줄 백신 제조에 매달리며 이를 위해 또 다른 생명체가 희생되고 있다. 바로 백신의 오염도를 점검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로 불리는 투구게이다.

투구게는 공룡이 등장하기 훨씬 전인 무려 4억 8000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서 살아왔다고 알려진 해양생물이다.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며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로 통한다. 투구게가 이렇게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독특한 면역 체계 때문이다. 항체가 없는 투구게는 세균이 몸 안으로 들어오면 즉시 혈액이 응고되는 반응을 보인다. 이런 특성으로 투구게의 피는 오염도를 확인해야 하는 시험약, 백신 제조에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이 오면서 인류는 전에 없던 엄청난 양의 백신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는 곧 엄청난 양의 투구게 피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현재 백신 관련 시설에는 수십만 마리의 살아 있는 투구게 몸에 대롱을 꽂아 피를 받아내고 있으며 이로 인해 투구게의 개체 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동부 델라웨어만에 서식하는 투구게가 1990년대는 124만 마리였으니 지난해엔 불과 33만 5000마리만 서식하는 거로 밝혀졌다.

인간은 그동안 신약 개발을 위해 수많은 동물을 희생양으로 삼아 왔다. 약 2천 500만 년 전 공동 조상으로부터 인류와 갈라졌다고 알려진 붉은털원숭이는 사람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실험실에 자주 끌려왔고 인간의 폐와 생리학적으로 유사한 폐를 가졌기 때문에 족제비 일종인 패럿 역시 희생되고 있다. 원래 쥐의 ACE2 단백질은 사람의 것과 다르지만, 과학자들은 실험을 위해 인간의 ACE2 단백질을 가진 쥐를 만든 후 실험실에서 죽이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를 위한 고민도 진행되어야 할 듯싶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