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홈루덴스 시대, 필요한 주거복지권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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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집은 가장 핫한 키워드가 됐다. 코로나19 확산, 사회적 거리 두기 장기화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재택(비대면) 학습 증가로 집의 의미는 거주 공간 이상이 됐다. 이제는 홈카페, 홈스토랑, 홈트, 홈스파 등 집 밖에서 즐기던 휴식, 여가, 운동도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에서 여가, 놀이를 즐긴다는 뜻의 홈루덴스(Home+Ludens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변화는 거세다.

코로나19가 만든 새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허락된 것은 아니다. 집을 직장, 학교, 카페, 스포츠센터 같은 공간으로 바꿀 수 있으려면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의 크기, 방의 개수, 공간 분리 등이 가구원 수에 따라 적절해야 하고, 채광과 환기, 냉난방 등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춰야 하며, 필요한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가능하다.

코로나19 시대 집의 의미 재발견
단순 거주 공간 이상 의미 되새겨

부산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10%
적정기준 마련 등 사각지대 없애야

공공임대 늘리고 임대료 지원 필요
주택 정책 넘어 주거복지권 보장을


‘최저주거기준’이라는 지표가 있다.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최소한 보장되어야 하는 주거생활 기준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갖는다(제35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 기준은 2004년에야 마련됐다. 가구원 수에 따른 최소 주거면적 및 방의 개수가 기준 미달인 경우, 필수설비(전용 입식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시설)가 1개라도 없는 경우가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에 해당한다.

국토교통부 주거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의 비율은 전체 가구의 5.3%(106만 가구)에 이른다. 5년 전인 2014년 5.4%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1인 가구 중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는 10.6%(61만 5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2배이다. 2020년 부산시의 주거 실태조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전체 가구의 10.1%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곳에 살고 있는데, 취약계층 가구(16.8%)는 일반 가구(7.2%)의 두 배다. 최저주거면적을 보면, 1인 가구 14㎡(4.2평), 2인 가구 26㎡(7.9평), 부부와 자녀 3인 가구 36㎡(10.9평)이다. 10년 전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고, 집이 좁기로 유명한 일본의 기준(1인 25㎡, 2인 30㎡)보다 작다. 이 현실에 맞지 않은 기준은 최저주거기준 이상이라고 해서,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님을 말해 준다.

모두가 홈루덴스족까지 바라지는 못해도, 최소한 폭염과 바이러스, 질병을 막아 주는 안전하고 쾌적한 집에서 살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국격 상승에 발맞춰 국민의 삶의 질 기준, 삶의 가장 기본인 주거생활의 기준도 높여야 하지 않을까. 최저주거기준을 변화된 현실과 요구에 맞춰 높일 필요가 있다. 다른 선진국처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만족스러운 주거생활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적정주거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기준 마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최저기준에 미달하는 집을 건축하고 임대하는 것을 제재해야 한다. 동시에 최저주거기준 상향과 열악한 주거에 대한 제재가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들지 않도록 적극적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 최저기준에 미달하는 노후 주택의 주거환경 개선을 지원하고, 임대주택의 경우 주거 개선이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한해야 할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도 해법이다. 특히 주거 취약성이 높은 비주택 거주자, 1·2인 가구, 주거 취약성이 성장 발달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아동 가구를 우선 지원할 필요가 있다. 2020년 기준, 부산시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5.72%(8만 871호)에 불과하다. 전국 시도와 비교해도 하위권이다. 공공임대주택 확대는 계획 수립, 택지 확보, 원주민 이주, 건설까지 통상 10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임대료 지원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주거 취약계층에게는 열악한 주거환경만큼, 높은 주거비 부담도 큰 문제다. 2019년 전국 임차 가구 비율은 38.1%에 달했다. 이 중 주거비 과부담 가구(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 30% 초과) 비율은 26.7%였다. 1인 가구는 그 비율이 30.8%에 이르고, 청년 1인 가구는 31.4%(부산은 40%)로 더 높다. 코로나발(發) 경제위기로 현재 그 비율은 더 증가했을 수 있다. 물론 주거빈곤층을 지원하는 주거급여제도도 있다. 부산시는 2019년 전국 최초로 청년월세지원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수는 389명에 불과해 확대가 불가피하다.

홈루덴스 시대, 건강하고 쾌적한 곳에서 생활할 권리는 더 중요해졌다. 단지 헌법 속 규정을 넘어 모든 국민의 삶 속에서 실현되는 권리가 되기 위해서는, 부동산 정책, 주택개발 정책이 아닌 주거복지권 보장정책이 필요하다. 집을 살(buying)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보다, 소득 능력과 무관하게 집에서 안전하고 쾌적하게 살(living)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에 우선적 관심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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