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부동산 전쟁 ‘묻고 더블로 가자’는 與, ‘판 뒤엎자’는 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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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정치부 차장

임기 말로 치닫는 문재인 정부 지난 5년의 최대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 헛발질이 첫 손에 꼽힌다. 자고 나면 천정부지로 날뛰는 집값에 민심은 싸늘하다 못해 흉흉할 지경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강남 집값을 잡겠다. 자신 있다”며 호기롭게 부동산 시장과의 전쟁을 벌였다. 주택 취득, 보유, 처분, 임대차에 이르는 전 과정을 온갖 금융 규제와 징벌적 과세로 틀어 막았지만, 당위성만 앞세우고 시장경제를 무시한 ‘오기식 정책’은 되레 집값과 전셋값만 폭등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졸지에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다주택자, 갈아타기의 주거 사다리를 걷어 채인 1주택자, ‘벼락거지’ ‘전세난민’ 신세로 전락한 무주택자 누구 하나 쏟아지는 포화 속에 유탄을 맞지 않은 이가 없다.

결국 꼬일 대로 꼬인 이번 정부 부동산 실책은 다음 정권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넘어가게 됐다. 이번 대선에서는 문 정부에서 폭등 시킨 집값 거품을 빼는 후보에게 무조건 투표하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선 주자들이 여야 없이 공정과 정의를 시대정신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보수와 진보 간 첨예한 전투는 ‘부동산 전선’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여야 대권 후보 모두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큰 명제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 진단과 원인 분석, 해법을 놓고는 여야가 양 극단으로 나뉘어 맞선 모습이다. 규제에 관한 한 여권 후보들은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치고 있고, 야권 후보들은 “판을 뒤엎자”고 나섰다.

여당 주자 6명의 부동산 공약은 토지공개념 적용과 불로소득 환수, 징벌적 과세를 통한 투기 차단 등 규제 강화로 기울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실거주가 아닌 비필수 부동산에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국토보유세를 주창하고 나섰다. 부동산 불로소득에서 걷는 세금을 자신의 핵심 공약인 기본소득 재원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는 개발이익 환수와 함께 종부세를 현행보다 강화하는 한편 개인의 택지 소유를 400평까지만 허용하는 택지소유상한법까지 들고 나왔다.

반면 야권 주자들은 하나 같이 규제 완화 내지 해제를 들고 나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종부세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했고, 홍준표 의원은 부동산은 자유시장에 맡기고, 재건축도 원하면 풀어주겠다는 입장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양도세와 보유세를 모두 없애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헨리 조지의 토지공유제부터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까지 진보와 보수 극단 이론이 여야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에 동원된 셈이다.

주택 시장에 미칠 부작용을 최소화해 시장을 연착륙시키겠다는 진중함보다는 지지층 표심을 끌어 모으겠다는 정치 공학과 진영 논리만 난무한다.

이대로 라면 누가 되든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불확실성만 가중되고, 정치하지 않은 정책의 위험한 실험장으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

집값 이상 과열은 부동산을 매개로 한 계층 양극화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그로 인한 우리 사회 계층간 대립과 갈등은 한층 사나워질 수밖에 없다. 대권 후보들이 갈등 해소와 국민 통합에 대한 소명감 없이 당장의 경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국민의 주거권을 판돈 삼아 무책임한 ‘베팅’을 해서는 곤란하다. widen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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