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가벼워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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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엽(1954~)

직선에서 곡선으로



허공을 찍고 지상을 향해

휘어져 내리는 바람



발걸음이 철벅일 때마다

변덕스럽게 흔들어대는 욕망은

부질없다고 비우면

허허로운 바람으로 부풀어



풀어지는 바람처럼 추억이나 기억은

조금씩 멀어져 가는 풍경으로 밀쳐두고



길바닥에 주저앉은 햇살 한 웅큼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그 무게만큼

곡선으로 휘어져서

찰나에 가벼움으로 흩어져

촘촘하게 살아온 지난날의 욕망도

비우는 만큼 또 다른 설렘

-시집 (2019) 중에서-


바람이 곡선이라니. 햇살이 곡선이라니. 그래서 직선보다는 곡선의 삶이 비우기가 더 좋다고 시인은 말한다. 모든 시간과 세월은 직선이다. 시간과 공간이 서로 투영되고 만물이 서로 연결되는 연결망도 직선이다. 직선의 기억과 직선의 꿈이 만드는 현재의 욕망도 당연히 직선이다. 사람들은 질병이나 큰 세속적 고통이 다가와야 비움을 통해 삶을 견딜 수 있음을 깨닫는다. 욕망을 비우기 위해 많은 시인들은 바람과 햇살과 시간을 동원하지만 비움의 방법론으로 시인은 곡선을 이야기한다. 시간과 공간의 연결망 속에 곡선은 없다. 그래서 곡선은 은유이며 비유이다. 꿈과 욕망은 직선이지만 용서와 반성과 속죄는 곡선이다. 모든 정신의 속죄자는 시인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니체는 말하지만 곡선의 은유를 깨달아야 비울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이규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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