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장 수온 섭씨 30도 근접 ‘뜨뜻’ “그냥 두면 다 죽으니 풀어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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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고수온 피해 현장

경남 통영시 한산도 앞바다 양식장에서 최근 숭어 1만 5000마리가 폐사하자 어민이 폐사체를 수거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대로 죽이느니, 풀어 주는 게….”

11일 오후 경남권 최대 양식어류 산지인 통영시 한산도 앞바다의 가두리 양식장에 널찍한 사각 틀 모양의 구조물이 줄지어 떠 있다. 하늘은 짙게 낀 구름이 뙤약볕을 가렸는데도, 바다 위 열기는 여전하다.

“어떻게 키운 놈들인데….” 힘이 부치는 듯 흐느적거리는 물고기를 지켜보던 어장주 나훈(49) 씨가 깊은 한숨을 토해 낸다. 바닷속 온도를 나타내는 수온계엔 26.7도가 찍힌다. 바다 양식 한계 수온인 28도에 근접했다. 이대로는 하루, 이틀 사이 떼죽음이다.

경남 통영·거제·남해·하동
525만 마리 폐사, 85억 손실
양식장마다 악취 진동
애타는 어민들 “잠도 안 와”

결국 나 씨는 폐사가 우려되는 어린 말쥐치를 미리 바다에 방류하기로 했다. 모두 10만 마리. 입식한 지 한 달 보름밖에 안 된 치어다. 무리를 가두고 있던 그물을 풀자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진다. 못내 아쉬운 듯 눈을 떼지 못하던 나 씨는 “우짜든지 잘 살기를 바란다”고 되?l다.

또 다른 양식장의 뗏목에 발을 딛는 순간 악취가 코끝을 자극한다. 수조 귀퉁이마다 물고기 수십 마리가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떠다닌다. 미처 수거하지 못한 폐사체다. 숭어 49만 5000마리가 있는 이 어장에선 며칠 사이 1만 5000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어장주는 “자고 나면 수백 마리가 떠오른다”면서 “마음이 안 좋다. 잠도 안 온다”고 하소연했다.

요즘 남해안 어류 양식업계의 여름나기가 힘겹다. 역대급 폭염에 바다도 끓어오르면서 양식 물고기 떼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겨우 살아남은 물고기도 지칠 대로 지친 데다, 후유증이 오래가는 고수온 특성상 폐사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경남에는 지난 2일부터 통영을 중심으로 고수온에 의한 양식 어류 집단 폐사 신고가 급증했다. 11일까지 접수된 어업 피해만 525만 6000여 마리, 85억 원 상당이다. 통영이 403만 7000마리로 가장 많다. 나머지는 거제 53만 4000마리, 남해 36만 1000마리, 하동 31만 4000마리, 고성 9700마리다. 이 중 410만여 마리가 고수온에 특히 취약한 우럭(조피볼락)이다. 이미 최악의 고수온 피해가 발생한 2018년(686만 마리, 91억 원)에 근접했다. 지금 추세라면 이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경남 연안에서 사육 중인 어류는 모두 2억 3000만여 마리로 절반에 가까운 1억 770만 마리(47%)가 고수온에 취약한 우럭이다. 최근 고수온 피해가 우럭에 집중되는 이유다. 그런데 올해는 참돔, 농어 등 비교적 고수온에 강한 난류성 어종에서도 폐사가 발생하고 있다. 어민들은 애지중지 키운 물고기를 지키려 면역증강제를 공급하고 산소 발생기와 산소 탱크를 24시간 가동하는 등 연일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부진에 고수온 피해까지 감내해야 하는 어민들은 속이 타들어 간다.

그나마 다가오는 주말 남해안에 많은 비가 예보된 터라 고수온 기세도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 어민들에겐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어류의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진 상황에 급격한 수온 변화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 생물에게 수온 1도의 변화는 육상 기온 4도와 맞먹는 충격이다. 게다가 수온이 떨어지고 많은 비로 육지에서 영양염이 공급되면 적조 발생을 부추길 수도 있다. 실제 전남 앞바다에는 지난 10일 올해 첫 적조 예비주의보가 발령됐다.

경남도와 해안지역 지자체는 실시간 수온 정보를 제공하며 피해 최소화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폐사가 우려되는 양식장을 대상으로 사전 방류사업을 독려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우럭, 감성돔, 말쥐치 등 72만 5000마리가 바다로 돌아갔다.

글·사진=김민진 기자 m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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