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끊겨 버린 남북 전화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로 미국과 소련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됐다. 대치 과정에서 소련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이 미국 백악관에 보낸 3000자짜리의 합의 메시지를 수신하고 해독하는 데 12시간이나 걸렸다. 늦은 의사소통이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양국은 핵전쟁 위기를 피하기 위해 1963년 핫라인 설치를 합의했다.

국가 간 핫라인 중에서 가장 슬픈 역사를 가진 것이 남북 직통전화다.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의 데탕트 바람을 타고 한반도에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전격적으로 채택됐다. 공동성명 발표와 함께 판문점 ‘자유의 집’과 ‘판문각’에 적십자 연락사무소가 각각 설치되고, 직통전화 2회선이 개통됐다. 6·25전쟁 이후 중립국 정전기구를 통한 간접 소통에만 의존했던 남과 북이 처음으로 직접 연락·협의 채널을 갖게 됐다. 한반도는 평화와 통일의 설렘으로 한껏 달아올랐다.

하지만, 판문점 적십자 연락사무소는 개소 이후 7차례나 운영이 중단됐고, 북한은 2020년 6월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마지막으로 청와대 핫라인을 포함한 모든 연락 채널을 폐쇄했다.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채널 폐쇄의 외부적 이유로 내세웠다. 오전, 오후는 물론이고, 수시통화도 했던 핫라인이었다.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 및 함정 간 국제상선공통망 등 군사 소통 채널도 먹통이 됐다. 북한군에 의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 공동조사를 위한 군 통신선 재가동 요청도 북한은 묵묵부답이었다.

차단 13개월 만인 지난달 27일 핫라인이 복원돼 꽉 막힌 남북 관계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재개통 2주일 만에 다시 북측이 응답하지 않아 ‘깡통 전화기’로 전락했다. 팀스피릿(1976~1993년), 키리졸브(Key Resolve),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 수십 년간 이름을 바꿔 실시된 한·미연합훈련을 16일 시작했다는 이유다.

어렵사리 복원한 통신선을 계기로 냉각된 남북, 북·미 관계를 개선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부푼 꿈도 사그라지고 있다. 남성 2인조 듀오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전화하지 말아요>에서 “그리운 그 목소리 미치도록 듣고 싶어요. 끊겨 버린 전화기만 또 바라보고 있죠…”라고 노래한다. 남북 통신연락선이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와 통일을 위한 동아줄로 복원되기를 기대한다. 남과 북이 전화로 웃고 떠드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