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언제 한번 보자/김언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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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에는 사월이 되어 가는 사람. 사월에는 오월이 되어 가는 사람. 그러다가 유월을 맞이해서는 칠월까지 기다리는 사람. 팔월까지 내다보는 사람. 구월에도 시월에도 아직 오지 않은 십일월에도 매번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 우리가 언제 만날까? 이걸 기약하느라 한 해를 다 보내고서도 아직 남아 있는 한 달이 길다. 몹시도 길고 약속이 많다. 우리가 언제 만날까? 기다리는 사람은 계속 기다리고 지나가는 사람은 계속 지나간다. 해 넘어가기 전에 보자던 그 말을 해 넘어가고 나서 다시 본다. 날 따뜻해지면 보자고 한다.

-시집 (2021) 중에서-

삶은 반복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의미를 두지 않고 일을 하고 의미 없이 농담을 하고 의미 없이 정을 주고받는다. 의미 없는 대화일수록 대화는 반복된다. 반복되는 무의미한 대화 속에 윤리가 있고 철학이 있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있고 죽음이 있다.

무의미하게 삶은 반복된다. 무의미하게 하루가 가고 무의미하게 계절이 바뀌고 무의미하게 한 해가 간다. 무의미하게 시를 쓰고 무의미하게 발표를 해도 지독하게 의미가 있음을 밝혀낸다. 무의미는 반복된다. 의미 있는 것은 반복되지 않는다. 어느 영화의 해결되지 않은 결말에서 송강호가 무의미하게 박해일에게 던진다. 밥은 먹고 다니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인은 무의미하게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 한번 보자. 무의미하지만 지독하게 슬픈 말. 언제 한번 보자.

이규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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