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돈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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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달라진 세태를 반영해 새로 등장한 용어가 많다. 그중 하나가 ‘돈쭐’이다. 돈을 융통하는 ‘돈줄’이 아니라, ‘돈’과 ‘혼쭐’을 합친 신조어다. 엄하게 꾸짖는다는 ‘혼쭐내다’란 말의 의미가 옳거나 좋은 일을 해서 귀감이 되는 소상공인의 물건을 팔아 줘 돕자는 뜻으로 변형돼 사용된다. “저 가게 사장님 정말 착한데, 아주 그냥 돈쭐을 내 줍시다.”

돈쭐은 평등과 공정, 정의를 외치는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에서 널리 쓰인다. 돈쭐내는 것이 MZ세대 소비 성향의 특징인 까닭이다. 이들은 수동적 소비 대상에서 나아가 적극적 소비 주체가 되려는 의지가 강하다. 단순 구매에 그치지 않고 능동적인 소비로 정치·사회적 신념을 표현할 때가 많다. SNS에서 해시태그 기능을 활용해 자기 관심사나 지지하는 가치를 공유하며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 내려고 한다. 소비 행위를 통해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을 표출하는 소비자 운동의 일종인 ‘미닝아웃(Meaning Out)’과 닮았다.

MZ세대를 비롯한 소비자들이 돈쭐로써 자영업자를 응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직장을 잃고 형편이 어려워 7세 딸의 생일을 챙길 수 없는 가장에게 피자를 선물한 모 피자집 주인이 화제다. 이에 네티즌들이 “돈쭐내러 가자”며 피자 가게 주소를 공유하자 피자 주문이 쇄도한단다. 한 치킨집 업주는 돈이 없는 청소년 형제에게 공짜로 치킨을 대접했다. 폐업 처지에 놓인 어느 쇼핑몰 사장은 암으로 투병하는 고객의 사용 후기에 용기를 주는 댓글을 달고 쾌유를 비는 선물을 배달했다. 이들에게도 착한 업소를 지원하려는 돈쭐 행렬이 이어졌다.

이는 코로나19 장기화 시국이 낳은 신풍속도다. 자신조차 살기 팍팍한 상황에서 훈훈한 선행을 한 사람에게 감명한 소비자들이 돈쭐로 감동을 더욱 확산하면서 모두가 힘겨운 시기를 극복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선한 영향력의 선순환 효과다. 케이블 채널 IHQ는 돈쭐 트렌드에서 착안해 19일부터 예능 프로그램 ‘돈쭐내러 왔습니다’를 방영한다. 코로나19 탓에 위기에 빠진 자영업자들의 매출을 올려 주기 위한 ‘먹방’ 콘텐츠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소설 에 나오는 놀부의 그릇된 보여 주기식 선행은 금물이다. 괜히 의도적으로 돈쭐을 노렸다간 불매 운동처럼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을 수 있다. 종업원에 대한 갑질과 소비자를 속이거나 불친절한 행위가 있어서도 안 된다. 부도덕한 경우는 단단히 혼쭐나야 마땅하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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