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에너지 분권' 환기한 기장 초고압 송전탑 피해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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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울산 울주군 신고리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을 다른 지역에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초고압 송전탑으로 고통받는 부산 기장군 주민들이 한국전력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이 기장군 철마면 상곡마을 10여 세대 주민의 손을 들어준 이번 판결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소규모 소송 결과이지만,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아무리 시급한 국가시설이라고 해도 설치 절차상 위법성이 있다면,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시사한다. 특히 안전 문제 등으로 찬반 논란이 심한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는 중앙집권적 에너지 정책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송전탑 반대 민원 많은 원전 비중 줄여야
신재생 에너지 통해 지역 자체 해결 필요

대법 민사2부는 지난 12일 한전은 상곡마을 뒤에 설치한 765㎸ 송전탑 5기로 인한 주민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세대당 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의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가 “한전이 경남 창녕으로 가는 송전선로의 초고압 송전탑을 건립하면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데다 송전탑 설치로 피해가 심각하다”는 주민들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2010년 제기된 이번 소송의 결과는 전국적으로 잇따르는 송전탑 반대 민원이나 피해 보상에 대한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게다가 모든 행정기관의 사업과 처분이 일방통행식으로 추진돼 절차상 하자가 있을 경우 손해배상이 가능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에 앞서 2005년부터 신고리원전에서 창녕 등지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시작된 경남 밀양 송전탑 설치 사업이 지역민들의 강한 반발로 완공 목표인 2012년이 훨씬 넘도록 답보 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 이 바람에 사업비가 3~4배로 껑충 뛰었고 민원을 둘러싸고 찬반 주민·국민들 간 갈등도 컸다. 지금도 그 피해와 후유증이 막대하다. 기장과 밀양의 사례는 원전의 비중이 높아 중앙집권 형태로 운영되는 국가 에너지 정책을 지역분권형으로 바꿔 나갈 필요성이 있음을 잘 보여 준다. 부산·울산을 비롯해 비수도권 해안가에 밀집한 원전들이 수도권으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원거리 초고압 송전선로와 수많은 송전탑 설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기장 송전탑 판결을 계기로 전국에서 유사 민원과 소송이 이어진다면, 국가 에너지 수급에 엄청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앞으로 원전 의존도를 줄이면서 신재생 에너지 등 다른 전력 공급원 비중을 확대하는 게 현명한 해결책이다. 이를 위해 각 지역의 신재생 에너지 사업 활성화를 통해 그 지역에 필요한 에너지는 지역에서 해결하도록 장려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수도권의 원전 건설을 바라는 수도권 주민들은 없을 게다. 그렇다면 수도권이 좋은 건 다 누리고, 지방에는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 원전 최대 밀집지에 살면서 일본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불안감이 커진 부울경 주민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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