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정부는 '수도권'이라는 '편협'한 틀 벗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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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 경제부 유통관광팀장

1990~2000년대 초반 부산에는 직원 수가 100명이 넘는 거대 여행사들이 많았다. 이들은 국내외 여행 상품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전국에 판매했다. 당시 1000만 명에 육박하던 부산·울산·경남 시장은 물론 수도권 이남까지 시장을 확대해 서울 업체들을 위협했다.

그러나 그 황금기는 이제 낯선 단어가 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서울지역 여행사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강력한 판매망을 구축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들은 국내 여행 전체를 장악했다.

서울 여행사들의 거침없는 시장 공략에 부산의 거대 여행사들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았다. 결국 부산에는 서울지역 여행사의 상품을 팔아 수수료만 챙기는 에이전시 여행사들만 난무했다. 부산 여행 산업은 서울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당시 여행업계의 경쟁이 공정했을까?

부산의 유력 여행사들은 그때를 회상하면 매일같이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지역 여행사들이 땀 흘리며 힘들게 여행상품을 만들어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기업들이 장악한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카피(복제)’ 혹은 유사 상품들이 보다 저렴하게 판매되기 일쑤였다.

막강한 자본력과 힘을 가진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아이디어나 상품을 가지고 가 버젓이 자기들 상품인 것처럼 파는 비양심적인 거래와 다를 바 없었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문제는 이 같은 ‘불공정’한 행위가 정부 정책에서도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정부의 여행 정책에는 ‘수도권’만 있을 뿐 ‘지역’은 없거나 뒷전이다. 수도권에 치중하고 지역을 외면하는 것 역시 불공정한 행위로 보인다.

실제, 코로나19로 막혔던 ‘하늘길’ 은 인천국제공항이 독차지하고 있다. 인천공항에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다양한 국제 노선이 운영 중이지만, 부울경의 유일한 관문인 김해공항에는 현재 김해~칭다오 1개 노선뿐이다. 이 노선도 애초에는 ‘반쪽노선’이었다. 이 노선의 귀국 편은 해당 김해공항을 들른 뒤 인천공항에서 입국하는 방식으로 운영됐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여행업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트래블버블(여행안전권역)’ 정책은 서울지역 여행업체와 인천공항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무착륙 국제관광비행’도 지난해 인천공항에 제일 먼저 허용된 뒤 김해공항에는 인천공항 허가 이후 거의 6개월 만에 가능해졌다.

이 같은 정부의 수도권 중심 정책은 부울경 주민과 여행업계를 외면한 채 서울 업체와 인천공항만 우선 챙긴다는 비판에 줄곧 직면하고 있다.

정부의 수도권 중심 정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이건희 미술관을 일방적으로 서울에 건립키로 결정하거나, 지역 숙원사업인 가덕신공항 건립도 수도권과 정치 논리로 짜 맞추기하려다 부울경 주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솔직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정부가 수도권 논리를 앞세운 불공정한 행위로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상처를 입힐지 걱정된다. 또 다른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수도권 시각의 틀에서 벗어나 지역의 시각도 함께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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