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고독생을 공동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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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호승은 ‘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읊었다. 그러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고 했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모두 외로울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시인은 신조차 외로움에 눈물 흘린다 했겠는가. 외로움, 즉 고독은 인간을 가장 괴롭게 하는 감정이다.

<고독에 대하여>를 쓴 일본의 미키 기요시(1897~1945)는 고독이 두려운 이유는 고독 자체 때문이 아니라, 고독의 조건 때문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고독은 산속이 아니라 거리에 존재하며, 한 인간이 아닌, 다수의 인간 ‘사이’에 있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 고독사(孤獨死).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살다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이 고독사로 지난해 하루 11명이 죽음을 맞았다.

최근 부산에서 고독사가 늘자 이를 막기 위해 지자체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고독사로 갈 수밖에 없는 고립된 삶 ‘고독생(孤獨生)’을 막기 위해 ‘안심 LED 센서 등’이나 ‘안부 콜(call)’을 통한 상시 돌봄 체계를 갖추거나 어르신들과 ‘속풀이 토크’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중장년·노인 1인 가구가 지속해서 증가하는 상황에서 지자체 등이 나서서 고독사에 앞서 고독생 방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무척 바람직하고 고무적인 일이다. 문제는 9월이면 부산이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 대비 20%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는 점이다. 또 코로나19로 인한 물리적 거리두기로 인한 ‘관계의 단절’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2030 청년들의 고독사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관계의 단절로 인한 고립은 외로움이나 고독감, 우울감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고독사를 유발한다. 따라서 이를 파악하고 위험군을 면밀히 관리하는 게, 고독사를 막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특히 노인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부산에서는 말이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독이 아니라 외부(사회)로부터 오는 외로움은 신체적 고통과 비슷하다. 우리는 이를 ‘사회적 고통’이라 한다. 사회적 고통은 고독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사회의 관심이 있다면, 사회적 고통은 사라질 수 있고, 고독생에서 고독사로 가는 길은 얼마든지 차단할 수 있다.

계절은 이제 가을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고독생을 공동생으로 만들어나갈 좀 더 ‘따뜻한 어깨’와 ‘따뜻한 손’이 필요하다. 정달식 문화부 선임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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