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오십 보로 백 보를 비웃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중국의 전국시대 위나라 세 번째 임금인 혜왕은 어진 신하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다. 이에 혜왕은 도읍을 대량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도 양으로 바꾼다. 그래서 옛 문헌에도 이전에는 위혜양으로 불리다가 이후로는 양혜왕으로 나온다. 에는 양혜왕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한 번은 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내가 왕으로서 백성에게 항상 대단히 잘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웃 나라의 백성들은 우리나라로 오지 않는 것입니까?” 맹자가 대답하기를 “전쟁에서 싸울 때 도망가면서, 한 사람은 백 보를 후퇴하고, 다른 한 사람은 오십 보를 물러났습니다. 그러자 오십 보를 물러난 사람이 백 보를 도망간 사람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오십 보를 도망간 사람은 똑같이 도망간 것입니다. 다만 좀 덜 간 것뿐입니다.”

오십 보 도망이나 백 보 도망이나
본질은 둘 다 똑같이 도망간 것

코로나 4차 대유행 50일 지나
영업시간 오후 10시에서 9시로 단축

국민은 이해 불가 피로도만 높아져
결정의 자료와 근거 국민에게 알려야


오십 보로 백 보를 비웃는다(以五十步笑百步)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다들 아시다시피 오십보백보는 겉보기만 다를 뿐 그 본질이나 내용은 차이가 없을 때 자주 쓰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마침 강의 도중에 이 이야기가 나왔길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오십 보와 백 보가 어떻게 같으냐? 오십 보를 도망간 놈은 그래도 조금의 죄책감을 느낀 것이나 백 보를 도망간 놈은 그조차도 없지 않느냐? 오십 보를 도망간 놈은 뉘우치고 다시 나아가 싸울 수 있지만 백 보를 도망간 놈에게는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으냐?” 그런데 이랬던 내가 요즘은 생각이 또 달라진다. 바로 코로나 사태 때문이다.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긴 지 벌써 50일이 지났는데도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국민들의 방역 피로감만 늘어나다 보니, 굵고 짧은 방역을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체면만 무색해졌다. 그러자 정부는 방역을 강화하겠다면서 수도권의 음식점 영업시간을 오후 10시에서 오후 9시로 단축한다고 발표했다. 참으로 나 같은 필남필부는 이해할 수 없는 조치다.

오후 10시와 오후 9시는 방역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음식점의 영업시간을 한 시간 단축해서 코로나 확산을 저지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벌써 코로나 청정국가가 되었을 터다. 정부가 코로나 감염이 오후 9시와 10시 사이에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통계자료라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몇 명의 확진자가 늘어났다는 방역당국의 발표만 들어 보았을 뿐, 어떤 시간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상황으로 확진자가 몇 명씩 늘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 사태가 해를 넘길 동안 우리 정부가 내놓은 방역대책은 늘 오후 8시가 오후 9시가 되었다가 오후 9시가 오후 10시가 되고 또 오후 10시가 오후 9시가 되고 아마 이제 곧 오후 8시가 되는 그런 대책들뿐이었다. 영업시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방역을 위해서 이런 업종에 대해서는 이런 제한을 저런 업종에 대해서는 저런 제한을 결정할 때마다 나는 정부가 어떤 자료와 근거를 토대로 저런 결정을 내렸는지 궁금하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당연히 오후 9시와 오후 10시 사이에 확진자의 몇 %가 발생하며 음식점과 카페에서 확진자의 몇 %가 발생하고 있어, 음식점의 영업시간을 오후 9시로 제한하면 확진자의 몇 %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는 정도의 예측치는 내놓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골목길을 포장할 때도 이런 정도의 근거는 내놓는다. 물론 정부의 예측이나 전망이 틀릴 수는 있지만, 그것조차도 없다면 도대체 이 정부는 무엇을 근거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지 모르겠다. 혹시 청와대나 정부청사의 어느 은밀한 방에 높은 분들이 모여 가위바위보로 정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부에 도움 될 만한 조언 하나 드린다. 가위바위보보다는 홀짝이 더 확률이 높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