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29) 작가의 내면을 반영한 인물, 권옥연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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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옥연(1923~2011)은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한국, 일본, 파리에서 예술혼을 키워가며 평생 화업에 몰두해온 작가이다. 그는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일본에 건너가 도쿄제국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고향’을 출품하면서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57년부터 1960년까지 파리의 아카데미 드 라 그랑 쇼미에르에서 유학했다. 귀국 후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 재직하며 후학양성에 몰두했다. 작가는 1950년대 파리 유학을 통해 앵포르멜 등 유럽 미술의 최신 경향을 직접 체험하고 개성적인 추상 양식을 구축한다. 초기 작품에서는 고갱의 영향을 많이 받아 양식화되고 평면적인 이미지로 풍경과 인물 작업을 했다. 파리에서 체류하는 동안 살롱도톤, 레알리테 누벨 등 당시 파리의 주요 전시회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차츰 문학성 강한 기존의 사실주의 양식을 버리고 추상 실험에 열중한다. 이후 다시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다양한 시도와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는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 그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지루할 때면 자신만의 독특한 색조와 질감으로 여인초상을 그리곤 했는데, 그 수가 수백여 점에 달하며 권옥연 스타일을 미술계와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대표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가 그린 소녀상들의 외모 특징은 분명하다. 모두 신비스러운 이국적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귀여운 들창코에 풍성한 머리, 짙은 피부의 톤, 아직 소녀 티를 벗지 못한 청순한 모습이다. 소녀상들은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대부분 작가가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다.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보다 인물을 형상화하는 방식이나 인물의 자세, 표정 등을 통해 작가 자신의 심성을 투명한 볼 수 있는데, 이는 파리 유학을 통해 유럽의 모더니즘 미학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작가의 열망이 이국적 여인으로 의인화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가 평생 집착하며 그려온 수 백여점의 소녀상은 서구로 향하기 위한 욕망의 코드로 해석해 볼 수 있진 않을까?

부산시립미술관은 권옥연의 ‘소녀상’ 1점을 소장하고 있다. 낭만적이고 신비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청색조의 배경은 우수에 젖은 소녀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고 회색조로 물든 피부는 모종의 정감과 따뜻함을 선사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권옥연의 소녀상 특징을 그대로 살펴볼 수 있으며 차분하게 정착된 색조를 통해 당시 작가의 내면적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09년도에 부산공간화랑 신옥진 대표가 미술관에 기증했다. 박효원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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