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나쁜 역동성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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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원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한국정치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개선이 안 보이고 계속 악순환 하고 있는 것이다. 전인권의 노래 ‘돌고 돌고 돌고’가 연상될 지경이다. 정치가 진전 없이 엉망으로 돌고, 상식도 진실도 없이 이전투구로 돌고 있으니 온전한 정신을 지닌 시민들은 화가 날 뿐이다. 한국정치는 역동적이다. 그런데 역동성은 좋은 방향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역동성도 있고, 나쁜 방향으로 퇴행하는 역동성도 있다. 한국정치는 두 가지 역동성을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좋은 역동성보다 나쁜 역동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4·19, 부마항쟁, 5·18, 6월 민주화운동 그리고 2016~2017년 촛불집회를 통해 발전해왔다. 이들 민주화운동은 한국정치에서 좋은 역동성이 표출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좋은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가 퇴행적인 건 바로 나쁜 역동성 때문이다.

일방적 무조건적 팬덤 문화가 역기능
차분한 ‘지지’의 정치 회복이 시급

상대방 무시·불신하는 비난정치 거세
가짜뉴스는 한국정치의 대표적 사회악

이상정치와 현실정치의 조화가 필요
극단적인 반대, 패거리 정치 사라져야

한국정치의 나쁜 역동성은 몇 가지 현상에서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다. 첫째, 정치적 팬덤이 너무 강하다. 팬덤은 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현상을 말한다. 한국정치에서 팬덤은 ‘빠’로 불린다. 문제는 정치적 팬덤이 정치 참여 측면에서 필요하기도 하지만, 빠의 정치가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더 수행한다는 점이다. ‘팬덤’은 ‘지지’와 다르다. 팬덤은 감성적이고 열정적이며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반면, 지지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쌍방향적이고 조건적이다. 그런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어떤 대상에 열광할 수 있을까? 분명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정치적 팬덤은 정치적 지지보다 좋은 게 아니다. 정치는 공동체에서 다양한 차이와 갈등을 표출하고 조정하고 최종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빠의 정치는 열광이 있어서 역동적이지만 이런 정치로는 정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팬덤 정치가 아니라 차분한 ‘지지’의 정치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비난이 너무 거칠다. 비판과 비난은 분명 다르다. 비판은 상대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반면, 비난은 상대에 대한 무시와 불신을 기초로 무조건 감정적으로 반대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한국정치는 발전적 비판이 아니라 제 살 깎기식 비난에 익숙해 있다. 정치인들의 말은 비판이 아닌 비난에 치우친 지 오래고, 인터넷, SNS, 유튜브 등 뉴미디어에서 난무하는 비난 역시 정도가 심각하다. 특히, 가짜뉴스는 비난 중심의 정치문화가 낳은 대표적인 사회악이다. 이처럼 비난정치는 한국정치를 나쁜 역동성으로 이끄는 대표 요인이다. 한국정치를 비난정치에서 구출하고 합리적인 비판정치로 전환하는 일이 시급한 것이다.

셋째, ‘정치’에 대한 오해가 심각하다. 정치를 권력투쟁으로만 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이다. 정치는 권력투쟁이 맞다. 그래서 정치인은 여우도 되고 사자도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사회다. 16세기 마키아벨리의 시대가 아니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신장된 현대 사회에서 정치는 이상정치와 현실정치의 조화를 필요로 한다. 음모와 암투, 불신과 배신, 힘과 권력만을 정치의 모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난센스다. 정치를 이런 구태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 더욱이 이상정치는 꿈만 꾸는 몽상정치가 아니다. 이상정치에는 나쁜 정치를 개선하려는 이성적인 의지가 담겨 있다. 꿈만 꾸면 곤란하다. 하지만 꿈이 없으면 나쁜 현실을 개선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가 바라는 정치인은 권력투쟁만 잘 하는 구시대의 정치인이 아니라 이상과 현실을 잘 조화하는 정치인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려는 이상과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능력과 힘을 지닌 정치인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과도한 현실정치와 권력정치는 한국정치를 역동적이게 만들지만, 그 역동성은 파괴적이고 퇴행적이다. 이상정치와 현실정치의 조화를 통해 현실정치의 폭주를 제어해야 하는 것이다.

넷째, 패거리 정치가 집요하다. 파벌정치, 붕당정치, 파당정치로도 불리는 패거리 정치는 상대의 주장과 정책을 무조건 거부하는 정치다. 반대를 위한 정치이자 승자독식의 비민주적인 정치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패거리 정치 속에서 한국정치는 역동적으로 살아왔다. 싸움은 역동적이고 싸움 구경은 신난다. 하지만 싸움만 하는 동네는 잘 살기 어렵다. 패거리 싸움에는 시비와 비난, 죽기 살기식 반대와 배제만 있고, 대화와 협력, 포함과 공존이 없기 때문이다. 패거리 정치가 가져온 무조건 반대와 배제의 정치, 상생이 아닌 상사(相死)의 정치를 이제는 극복해야 한다. 한국의 정당정치는 이제 이해와 비판 그리고 합의와 포함의 정치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힘 센 거대 양당이 서로의 정책과 개혁을 무조건 거부만 하는 극단적인 반대의 정치는 사라져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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