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납고부터 총탄 자국까지… 동굴 속 상흔에서 평화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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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굴기(窟記) 매몰된 역사] 하. 아픈 역사도 흘러야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에 뚫려 있는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정수원PD blueskyda2@

일제강점기 비극의 역사는 시간이 흘러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곤 한다. ‘평화 도시’를 자청하는 지역은 벌집처럼 뚫려 있는 수백 개의 일제 시대 동굴을 역사 교육 현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제주, 자살특공대 출격 진지 등
벌집처럼 뚫린 동굴만 600여 곳
최소한만 손봐 교육 현장으로

영동, 노근리 쌍굴 총탄 그대로
탄약저장고는 새우젓 숙성고로
흑역사로 쉬쉬 않고 배움터 조성


■ 제주, 전투기 격납고에 핀 ‘평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넓은 평야 한가운데 아치형 언덕이 솟아 있다. 그 아래는 ‘알뜨르비행장 일제 지하벙커’가 숨어 있다.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간 곳에는 좁은 동굴 입구가 나 있고, 내부에는 7~8평 남짓 공간이 있다. 이 지하벙커는 1926년 인근 알뜨르비행장의 지휘소, 통신소로 지어졌다.

지하벙커 옆 평야에 펼쳐진 알뜨르비행장 격납고는 현재 20개 중 19개가 원형 보존됐다. 입구가 ‘ㅗ’자형으로 뚫려 있는데 폭 20m, 높이 4m, 길이 10.5m 규모다. 일본은 이 비행장을 통해 중국 등 대륙을 침탈하고 본토를 방어했다.

알뜨르비행장 옆 셋알오름에는 제주 내 최대 규모 동굴진지가 있다. 격자 미로형 구조로, 중간을 가로지르는 큰 길이 뚫렸고 길 중간 양쪽으로 추가 통로들이 나 있다. 이곳은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탄약고, 연료창고, 비행기 수리공장, 어뢰 조정고, 통신실 등으로 쓰였다.

인근 해안가에는 과거 일본 ‘자살특공대’(카이텐 부대)가 출격했던 ‘일제 해안 동굴진지’가 있다. 해안 절벽 아래에는 벌집처럼 작은 동굴들이 길게 뚫려 있으며, 동굴 갯수만 무려 17개다. 해안 동굴진지 바로 옆 송악산에는 ‘외륜 일제 동굴진지’도 뚫렸다. 총 동굴 길이는 1.4km로 제주도 동굴 중 두 번째로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둘러본 장소들은 제주도가 마련한 ‘다크투어리즘’(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여행) 코스다. 유적마다 용도와 시기, 규모 등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고, 어린아이가 쉽게 이해하도록 ‘만화 이야기판’도 만들어져 있다. 알뜨르비행장 한 격납고에는 과거 일본 비행기를 본뜬 모형도 설치됐다.

제주도는 일제강점기 당시 크고 작은 전쟁 동굴이 무려 600곳에 달했다고 한다. 제주도는 최소한의 정비만 마치고 원형 대로 보존해 강제노역, 전쟁의 잔인함과 참혹함을 느끼도록 역사 자원으로 활용했다.



■ 영동, 일제 동굴이 숙성고·배움터로

충북 영동군 매천리 산 35-1 일원 산 언덕 아래에는 아치형 동굴 입구가 있다. 내부는 높이 3~4m 길이 30여m로, 거친 바위들이 둘러져 있다. 이곳에는 300kg짜리 대형 드럼통 수십 개가 들어차 있다. 새우젓을 숙성하는 통이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탄약저장고로 만들어진 이 동굴은 현재 새우젓 숙성고로 탈바꿈했다.

영동군은 1999년 상태가 좋은 일본 동굴들을 선정해 각종 농특산물 저장·발효 공간으로 정비했다. 굴의 역사 등 일제강점기 흔적을 그대로 느끼면서 젓갈 관련 체험도 할 수 있는 견학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영동에는 다크투어리즘 명소로 자리 잡은 일제강점기 굴도 있다. 광복 이후 참혹한 한국 근현대사가 담긴 ‘노근리 쌍굴다리’가 그 주인공이다. 이곳은 1934년 일제강점기 일본이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지은 ‘쌍굴(雙窟)’이다. 두 개의 커다란 터널 형태인 굴은 외부 높이가 12.25m, 안쪽 높이는 10.35m다. 한쪽 굴의 폭은 6.75m, 길이는 24.5m다.

노근리에서는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5일간 미국 제1기병사단 제7연대 2대대 H중대에 의해 민간인이 학살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임계·주곡리 등에서 주민 500여 명이 피난을 가던 길이었다.

노근리 쌍굴다리는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평화와 인권을 위한 ‘배움의 장소’가 됐다. 2011년에는 4만 평 규모의 노근리평화공원이 조성됐고, 매년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추모식이 열린다. 쌍굴에도 당시의 참혹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총탄이 박혔던 곳에 동그라미, 세모 표시를 표시를 해두고 있다. 당시 사건을 생생하게 기록한 평화기념관 등도 건립되는 등 다크투어리즘 명소로 탈바꿈했다.



■ 끝나지 않은 ‘굴記’

제주도와 영동군 모두 동굴 속에 갇힌 진실을 ‘흑역사’로 취급해 쉬쉬하지 않고, 이를 알리기 위해 힘써왔다. 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 양해찬(81) 회장 등은 20여 년간 진실규명 활동을 벌여 2004년에는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이끌었다.

영동군은 지금도 방치돼 있는 일제강점기 탄약고, 방공호 등 동굴에 대한 실태조사와 재단장 계획을 준비하는 등 역사와 공존하는 방법을 계속 모색 중이다. 매천리 일대 도로에는 이같은 동굴이 90여 개 더 있다. 발견되지 않은 곳까지 합하면 100여 곳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동군 관계자는 “숙성 창고로 이용되던 굴도 처음에는 이와 같았다”면서 “관심을 기울이고 공존을 모색한 결과,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의 숙성고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2010~2015년 지역 내 일제 군사시설을 전수 조사하고, 각 시설 특성에 맞는 활용계획을 세우는 등 기록화 작업에 나섰다. 일부 유적은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부지 매입이 추진됐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동굴 붕괴 전에 기록을 남겨야 했고, 전수 조사를 기반으로 보수·정비 공사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한국동굴안전연구소와 제주도동굴연구소가 광복 76주년을 앞두고 ‘근대전쟁유적 제주도 일본군 동굴진지 현황조사 및 증언채록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동굴에 담긴 아픈 역사가 지속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끝>

이승훈·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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