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에 선 청년들, 춤으로 날아오르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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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화회관 기획 춤판 ‘MOTI/어디로부터’
이정윤 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연출·안무 신작
9월 3~5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서 첫 공개

이정윤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의 신작 ‘MOTI/어디로부터’가 가 9월 3~5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첫 공개된다. 사진은 연습 장면. (재)부산문화회관 제공 이정윤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의 신작 ‘MOTI/어디로부터’가 가 9월 3~5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첫 공개된다. 사진은 연습 장면. (재)부산문화회관 제공

애잔하면서도 빠른 리듬의 음악을 배경으로 10여 명의 무용수가 뭉쳤다 흩어짐을 반복한다. 부산문화회관 연습실 다듬채. 이들은 부산시립무용단 이정윤 예술감독 신작 연습으로 바쁘다. 이 감독의 눈은 무용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돼 있다. 이 감독의 손짓, 말 한마디에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하루 4시간씩 두 달 가까이를 이렇게 달려왔다.

이정윤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의 신작 ‘MOTI/어디로부터’(이하 MOTI)가 가 9월 3~5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첫 공개된다. (재)부산문화회관에서 1억 원을 들여 기획·제작한 이번 공연은 이 감독이 연출과 안무를 맡았다. ‘MOTI’는 부산문화회관이 2019년 연극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시작으로 장르별로 자체 기획·제작 작품을 매년 하나씩 선보인 후 이번이 네 번째며, 무용 분야로는 처음이다.

‘MOTI/어디로부터’ 연습 장면. (재)부산문화회관 제공 ‘MOTI/어디로부터’ 연습 장면. (재)부산문화회관 제공

‘MOTI/어디로부터’ 연습 장면. (재)부산문화회관 제공 ‘MOTI/어디로부터’ 연습 장면. (재)부산문화회관 제공

MOTI는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이 직접 참여한 소위 ‘잘 만든 부산(Well Made Busan) 작품’이다. 이 감독은 이번 작품을 위해 5월부터 2개월간 공개 오디션을 거쳐 부산·울산·경남 지역 무용수 14명을 선발했다. 나이는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다. 이 중에는 부산시립무용단원도 4명이 포함돼 있는데, 모두 오디션을 거쳐 선발했다. 이 감독은 “MOTI 오디션은 무조건 춤 잘 추는 순으로 선발한 게 아니라, 공연 성격에 적합한 인물을 찾아 선발했다”고 말했다.

이번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공연 최연장자인 김도은(36·부산시립무용단) 씨는 “작품 취지가 너무 좋아 꼭 해보고 싶었다. 육아로 바쁜 몸이지만,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오디션에 응했다”면서 “무용단 공연이 아닌 또 다른 무대에서 감독님과 작업할 수 있어 영광이다”고 말했다.

부울경 무용수 14명 오디션으로 선발

스피커 50개 활용 입체 음향도 선봬

젊은 예술가들 비상할 수 있는 계기로

작품 명인 MOTI는 Motivation(동기)의 준말이자, 모퉁이, 모서리를 일컫는 경상도 사투리 ‘모티’를 가리키는 말로, 삶의 모퉁이(모티)에 선 청년들의 비상을 향한 춤 랩소디이다. ‘모퉁이(모티)’는 막혀 있거나 ‘끝(끄티)’이 아니라 돌아 나오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만큼, 젊은 예술가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MOTI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기회에 대한 문제를 되짚는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건드리며 기득권이나 기성세대에게 경종을 울린다. 지역으로 보면 ‘무용학과 폐과’와 같은 현실도 맞닿아 있다. 이 감독은 “MOTI는 우리의 일상을 건드린다. 특히 20대가 고민하는 부분을 짚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 누구보다 삶의 모퉁이에 내몰린 청년들은 어디서부터 누구로부터 내몰린 것인지 미처 질문할 새도 없이 맞닥뜨린 지리멸렬한 삶의 순간을 살고 있다. 2020년 거의 셧다운 되다시피 한 공연예술계의 상황과 2021년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는 환경 속에서 예술가들이 지속해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한편,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 젊은이들이 꿈을 놓지 않는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기획된 무대다. 이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참여한 젊은 예술가들이 다시금 비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면서도 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꿈을 꾼다고나 할까.

공연 시간은 70분가량 컨템퍼러리 댄스(contemporary dance)로 펼쳐진다. 공연 시작과 함께 MOTI 오디션 장면이 영상으로 펼쳐진다. 무용수들이 오디션을 보면서 인터뷰하고, 또 고민에 빠졌던 것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번 공연 무대는 도화지처럼 하얗다. 남아 있던 중앙 무대도 시간이 갈수록 하얗게 변모한다. 이 감독은 “이는 20대의 순수와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현실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또한 MOTI의 공간적 개념, 즉 모퉁이를 입체적으로 시각화해 큐빅처럼 보여준다. 부산문화회관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스피커 50개를 활용한 360도 서라운드 입체 음향 기술((immersive system·관객을 중심으로 에워싸는 듯한 음향 효과)을 적용한다. MOTI의 주호일 음향 디자이너는 “관객들이 무대 객석이 아니라 마치 무대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줘 몰입감을 극대화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의 음악 감독은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김종욱 수석지휘자가 맡아 무대의 완성도를 더한다.

‘MOTI/어디로부터’ 연습 장면. (재)부산문화회관 제공 ‘MOTI/어디로부터’ 연습 장면. (재)부산문화회관 제공

14명 춤꾼의 혼신의 연기에 관객은 부지불식간에 눈물 흘릴지도 모른다. 이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생명체, 호흡 등 내면의 근원에 집중한다. 그리고 본인이 표출하는 무용적 언어로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MOTI 오디션 심사위원을 맡았던 발레리나 김주원(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씨는 “예상할 수 없고 뻔하지 않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아서 너무 기대된다”고 했다.

한편 2020년 8월 감독으로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에 취임한 이 감독은 2020년 취임 공연 ‘소생(甦生)’, 2021년 부산시립무용단 정기공연 ‘본색(本色)’을 통해 독창적인 시공간과 무대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다. ▶부산시립무용단 ‘MOTI/어디로부터’=9월 3일(오후 8시), 4·5일(오후 5시)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R석 5만 원, S석 3만 원, A석 2만 원. 051-607-6000.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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