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그놈'의 전자발찌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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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 연쇄살인 사건 계기로 돌아본 전자감독제도
-성폭력 범죄자 외 살인·강도·가석방 일반사범도 착용
-감독 인원 늘리고, 경찰과의 공조 등 대책 보완해야


전자발찌. 부산일보 DB 전자발찌. 부산일보 DB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감독 장치) 훼손 전후로 여성 2명을 연쇄 살해한 강윤성(56) 씨 사건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아서 구체적인 내용은 알기 어렵지만, 강 씨를 감독하고 신속히 검거해야 할 법무부와 경찰이 미숙하게 대처했다는 내용은 안타까움과 함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국내 전자감독제도(Electronic Monitoring System)의 어떤 결함이 이런 비극을 초래한 것일까? 강 씨 사건을 계기로 국내 시행 13년째를 맞고 있는 전자감독제도의 변천 과정과 문제점, 그리고 개선 방안에 대해 알아본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훼손 전후로 여성 2명을 잇달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윤성 씨가 지난달 3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마이크를 발로 걷어차고 있다. 연합뉴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훼손 전후로 여성 2명을 잇달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윤성 씨가 지난달 3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마이크를 발로 걷어차고 있다. 연합뉴스

2008년 국내 첫 시행 전자감독제도

법무부 정의에 따르면 전자감독제도는 전자적 기술을 적용해 범죄인을 감독하는 형사정책 수단이다. 재범 위험성이 높은 특정 범죄자의 신체에 전자장치를 부착해 24시간 대상자의 위치,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보호관찰관의 밀착 지도·감독을 통해 재범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당초 이 제도가 도입되기는 성폭력 사범의 높은 재범률,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과 성폭력 범죄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 등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2007년 4월 27일 제정·공포한 ‘특정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현행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이 그 근거다. 실제 시행은 예정일 10월 28일보다 앞당겨 2008년 9월 1일 이뤄졌다.

지난해 2월 4일 일부 개정된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에는 목적(제1조)이 더 포괄적으로 제시된다. “이 법은 수사·재판·집행 등 형사사법 절차에서 전자장치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불구속재판을 확대하고, 범죄인의 사회복귀를 촉진하며,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전자장치의 효율적인 활용으로 불구속재판을 확대’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범죄인의 사회복귀 촉진’이나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데 전자발찌가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서울 동대문구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동대문구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의 모습. 연합뉴스

성폭력 외에 살인·강도 등 대상 확대

전자감독제도 시행 이후 적용 대상 범죄의 범위는 순차적으로 확대됐다. 처음, 이 제도가 법률로 제정될 때만 해도 성폭력 범죄 하나로만 제한됐지만, 시행 1년 만인 2009년 미성년자 약취‧유인 범죄가 포함되더니, 다시 1년 후에는 살인 범죄가 추가되었고, 2014년 6월엔 그 범위가 강도 범죄로까지 넓어졌다. 2020년 8월부터는 기존 4대(성폭력·유괴·살인·강도) 특정사범 외에 가석방되는 모든 사범이 전자장치 부착 대상이 되었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집행 누적 인원은 해마다 증가 추세(표 참조)이다. 사범별로 보더라도 2020년 3959명이던 것이 2021년 7월 말 현재 4647명이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4647명 중에는 일반사범(가석방) 1493명(32.2%)도 있지만 절반 이상(55.6%, 2586명)은 성폭력 범죄자다.

제도 시행 초기와 달리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가 늘다 보니 훼손 사례 역시 크게 늘었다. 특히 2012년 8월 전자발찌를 차고도 성폭행과 살인을 저지른 ‘서진환 사건’을 계기로 전자감독제의 효용성 진단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았다. 제도 시행 초기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와 개선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전자감독 대상자 연도별 현황. <법무부 자료1> 전자감독 대상자 연도별 현황. <법무부 자료1>

전자감독 대상자 사범별 현황. <법무부 자료2> 전자감독 대상자 사범별 현황. <법무부 자료2>

전자발찌 훼손 범죄 잇따라

최근 전자발찌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도 강도강간, 강도상해 등 전과 14범인 강 씨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신천동 노상에서 ‘전자발찌를 훼손’한 뒤 29일 경찰에 자수하며 자백한 2건의 연쇄살인 범행 때문이다. 강 씨 사건 외에도 전남 장흥군에선 성범죄 전과자 마창진(50)이 ‘전자발찌를 끊고’ 12일째 잠적해 경찰이 1일 공개수배에 나섰다. 전북 전주완산경찰서는 ‘전자발찌를 차고’ 여성을 흉기로 위협하며 성폭행을 시도한 40대를 구속했다고 1일 밝혔다.


법무부와 광주보호관찰소 해남지소는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도주한 성범죄 전과자 마창진(50) 씨를 수배한다고 1일 밝혔다. 마 씨는 지난달 21일 전남 장흥군 자택 인근에서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달아났다. 연합뉴스 법무부와 광주보호관찰소 해남지소는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도주한 성범죄 전과자 마창진(50) 씨를 수배한다고 1일 밝혔다. 마 씨는 지난달 21일 전남 장흥군 자택 인근에서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달아났다. 연합뉴스

이보다 훨씬 앞서 올해 5월 부산 동래구에서는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은 20대 남성이 자기 집에서 100m 떨어진 여성이 혼자 사는 집에 침입해 성폭행을 저질렀고,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체포된 일이 있었다. 7월엔 성범죄로 복역 후 전자발찌를 찬 40대 남성이 부산 해수욕장 주변에서 여성 몰래 불법 촬영을 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법무부가 밝힌 전자발찌 훼손 현황에 따르면 △2008년 1건에 불과하던 것이 △2009년 5건 △2010년 10건 △2011년과 2012년 각각 12건으로 늘었다가 △2013년(6건)과 2014년(9건) 줄어드는가 싶더니 △2015년과 2017년 각 11건 △2016년 18건 △2018년 23건 △2019년 21건까지 치솟았다가 △2020년 13건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 7월 말 현재 11건(미검거자 2명)이다.


전자발찌 훼손 현황. <법무부 자료3> 전자발찌 훼손 현황. <법무부 자료3>

전자발찌 착용자 재범 우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전자발찌 착용자의 재범률이다. 그동안 전자장치 부착 제도는 재범률 감소, 위치추적 대상자의 태도 변화 등을 고려할 때 범죄자의 재범 방지에 효과적인 제도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전자감독을 받는 대상자 중 성폭력 동종 재범률(표 참조)은 2008년 당시 0.49%이었으나, 2011~2018년(2013년 예외) 내내 2%대를 유지하고, 2019년(1.70%)과 2020년(1.27%) 약간 떨어졌을 뿐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최근 10년간 성폭력 범죄로 전자감독을 받고 있는 대상자 100명 중에 1~2명(평균 1.27~2.53%)이 다시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끔찍한 통계이다. 전자감독을 받고 있지 않는 성범죄자의 재범율 6% 선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지만, 전자발찌를 부착해 전자감독을 받고 있는 성폭력 범죄자가 다시 성폭력 범죄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심각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2021년 7월 현재 전자감독을 받는 대상자의 특정범죄 유형별 인원을 보면, 성폭력이 2586명(55.6%), 살인 457명(9.8%), 강도 98명(2.1%), 미성년자 유괴 13명(0.3%) 순이다.

성폭력 동종 재범 현황. <법무부 자료4> 성폭력 동종 재범 현황. <법무부 자료4>

■보호관찰관 인력 부족 문제

전자감독 재범 방지 제도는 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많은 이가 꼽는 첫 번째 이유는 “전자감독 관리업무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현장에는 그 업무를 감당할 수 있는 인력이 충분치 않고, 현장 보호관찰소에선 업무 수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내 전자발찌를 찬 전자감독 대상은 4847명이지만,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보호관찰관의 수는 281명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1인당 관리 대상은 17.3명이다. 이는 5년 전 전자감독 대상자 2696명일 때 보호관찰관 141명으로 1인당 19.1명일 때보다 작다. 올해만 해도 벌써 11건의 전자발찌 훼손 사례가 보고됐고, 강 씨도 공업용 절단기로 전자발찌를 절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대한변호사협회는 2일 성명에서 “법무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전자발찌 재질 강화로는 범죄 의지를 꺾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면서 “보호관찰관을 대규모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분야 연구 전문가들도 “전자감독제도의 실질적인 감시를 위해서는 보호관찰관의 효율적인 업무 분담을 전제로 하여야 하며 전자감독 전담 보호관찰관의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인원의 확충이나 전담팀을 구성하여 업무를 분담하고 책임을 배분하여 심리적인 부담감을 덜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담직원 1인당 관리 현황. <법무부 자료5> 전담직원 1인당 관리 현황. <법무부 자료5>

경찰·보호관찰 공조 강화해야

이번 강 씨 사건에서도 드러났지만, 법무부와 경찰 간 공조 체제도 다시금 점검해야 할 것이다. 대한변협은 “경찰관들이 강 씨 집을 여러 차례 찾아갔으나 수색 권한이 없어 돌아오는 바람에 두 번째 범죄를 막지 못했다”며 “집중관리 대상자인 경우 보호관찰관이나 경찰관이 최소한의 절차로 현장을 수색할 법적 권한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도 “이번 사건은 법무부와 경찰의 엇박자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위치추적 관제센터와 보호관찰소에 경찰관이 상주하면서 상황 발생 시 즉시 경찰 출동 지휘 체계가 작동하도록 공조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지사는 “발찌 훼손이나 외출 금지 위반과 같은 고의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경찰이 주거지 출입이나 강제수색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면 경찰관이 적극적으로 직무를 수행, 범죄 예방 효과를 상당히 높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웅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내 법무부 의정관에서 전자감독대상자 전자장치 훼손 사건 경과 및 향후 재범 억제 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웅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내 법무부 의정관에서 전자감독대상자 전자장치 훼손 사건 경과 및 향후 재범 억제 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자감독 문제만은 아냐

어쨌든 제도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철저한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런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정·재범 전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2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부실 대응 논란이 일고 있는 서울동부보호관찰소를 돌아본 뒤 “전자감독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수용시설에 있을 때 교정 프로그램과 재범 위험성 예측도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그런 내용도 담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물론 범죄자 또는 출소자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인권 보호라는 측면이 완전히 무시되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의 인권이 범죄 피해로 인해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과 재범 가능성을 우려하며 노심초사하는 국민 인권보다 더 소중할 수는 없다. 다시 현행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의 내용으로 돌아가서 전문을 찬찬히 읽어 본다. 그리고 마지막 문구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에 방점을 찍는다.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놈’의 전자발찌에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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