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두껍아 두껍아 빈집 줄게 살 집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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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지난달 13일 감사원이 공개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47년이 되면 우리나라 모든 시·군·구가 소멸 위험지역이 된다. 물론 인구 감소와 소멸 위험도 지역 간 격차가 있기는 하지만 인구 불균형과 공동체 위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가파른 인구 감소와 더불어 늘어나는 것은 빈집이다. 단군 이래 최고의 집값 상승으로 ‘영끌’ ‘빚투’에다 ‘부모 찬스’까지 동원해도 내 집 마련은 점점 힘들어지는데 빈집은 늘어난다 하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에도 집값 상승세는 멈추지 않고 주택 공급을 늘리는 신도시 개발은 집값 급등을 계속 부채질한다.

인구 불균형이 공동체 위기도 부추겨
지방소멸 가속화에도 빈집은 늘어나
집값 걱정 없이 편히 지낼 공간 필요

집값 상승의 원인을 주택 양의 부족으로 돌리며 수요만큼 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기사가 연일 나온다. 주택 공급 부족으로 일어나는 청약 과열이라는 게 맞는 말일까. 이미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가 넘는다. 엄밀히 말하면 주택이 아니라 새 아파트가 부족한 현상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집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사서 얼마만큼 올랐는가에 관심을 두는 투기 대상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월간 집’을 보면 부동산 투자 회사를 운영하는 주인공은 집에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는다. 주소마저 옮기지 않고 팔리면 곧장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기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려 집을 통해 누리는 건 차익 말고는 없다. 극단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현실의 단면인 듯하여 씁쓸했다.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이농 현상을 부추겼고 농촌을 떠난 이들은 도심 주변으로 모여들어 판자촌을 이루었다. 이후 1970년대 개발 붐과 더불어 전국을 누비며 돌아다닌 복부인들은 도시에 늘어난 판자촌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전례가 있다. 강남 배밭이 개발돼 어느 날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는 사례는 부동산 불패를 더욱 확고히 했다. 그 시절 학습의 효과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영향을 주는 듯하다.

아파트가 대중화되기 전인 1970~80년대의 대부분 집은 한옥, 단층이나 이층집 등 소위 우리가 말하는 일반 주택이었다. 주인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기도 하고 하나의 주택에 여러 가구가 모여 살기도 했다. 기존 주택보다는 훨씬 편하고 넓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아파트는 서민의 꿈이 되었다. 그렇게 도시는 하나둘 아파트로 채워지고 살기 불편한 노후 주택은 외면받았다. 주택을 고쳐 쓰는 것보다 빨리 지을 수 있는 나대지나 아무것도 없는 밭을 사서 한꺼번에 올린 아파트로 사람들은 몰려갔고 버려진 주택은 도심 공동화를 초래했다.

원도심은 구도심이 되고 신도시는 언제까지나 신도시로 남아 있지 않는다. 지방소멸은 가속화하는데 계속 늘어나는 빈집들은 어떻게 할 건가.

통계청에 따르면 특별·광역시 중에서 부산의 빈집이 가장 많다. 11만 3000호로 그중 지은 지 30년 이상 된 집은 3만 5000호에 이른다. 고령자 1인 가구 비율도 특별·광역시 중 가장 높다고 하니 고령화와 집의 노후화 속도는 다른 도시에 비해 빠른 셈이다.

다음 달이면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빈집의 실태 조사와 정비 계획 및 이행강제금 부과 등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빈집 확산 방지와 방치된 빈집을 공원, 주차장, 돌봄 공간, 임대주택 등 다양한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새 집이 아니라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방안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인프라 구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특히 공공 임대주택 수립 때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선호도가 낮은 소형 위주의 공급은 수요자가 외면한다. 이미 분양한 공공 임대주택은 공급 물량 목표를 채우는 데 급급해 전용 면적이 3~12평이 대부분이니 살기에 너무 좁다는 평가다. 거기다 대부분 교통이 불편해 6개월 이상 장기 미임대가 늘고 있다. 교통부터 인프라까지 면밀히 강구해야 한다.

세대가 올라갈수록 높아지는 내 집 마련의 열망과는 달리 2030 세대는 집을 ‘소유’의 개념보다 ‘거주’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하메족’(하우스메이트족의 준말)이 확산한다. 물론 젊은 층들은 당장 집을 사기에 힘든 상황이라 그렇다 하지만 젊은 층이 아니라 해도 계속되는 1인 가구 증가는 다양한 형태의 주택과 커뮤니티 공간을 필요로 한다.

‘주(住)’는 ‘의(衣)’처럼 철마다 디자인이 바뀌거나 ‘식(食)’처럼 매끼 골라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집값 오를 걱정 없이 오래도록 편히 지낼 집이 필요하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를 자꾸 “두껍아 두껍아 빈집 줄게 살 집 다오”로 바꿔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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