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코로나 사태에도 푸르른 상록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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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전면등교가 시작된 부산의 학교들. 부산일보DB

학생 농촌계몽운동 행사에 참여한 박동혁은 “지식인들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며 우수 대원으로 뽑힌 채영신에게 호감을 갖고 그녀를 함께 농촌운동을 같이 할 동지로 생각한다. 동혁의 성실함에 영신도 마찬가지로 그와의 만남을 감사하게 여긴다.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농림학교를 그만둔 동혁은 고향 한곡리로 내려가서 농촌계몽운동을 벌인다. 기독교청년회 농촌사업부의 특파원으로 청석골로 내려간 채영신은 부녀회를 조직하고 마을 예배당을 빌려 어린이들을 가르친다. 영신은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권유 때문에 한곡리의 동혁을 찾아가 농촌운동의 기반을 잡은 3년 후에 결혼할 것을 약속하고 돌아와 본격적인 농촌운동에 몰두한다.

코로나19로 제한됐던 전면등교 재개
오랜 비대면 강의로 기초학력 저하
온종일 아이들과 있는 가정 고충도 커

교육 종사자 늘어난 방역 업무 부담
인력 확충 등 일선 종사자 보호해야



일제 강점기 농촌에서 헌신적으로 계몽운동을 벌인 청년 지식인들의 삶을 그린 심훈 선생의 소설 ‘상록수’는 이렇게 시작한다. 영신의 계몽활동을 탐탁찮게 여긴 일제 경찰은 예배당이 낡았다는 이유로 한 번에 50명 이상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명령을 내린다. 미처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은 영신의 치맛자락을 부여잡으며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운다. 함께 통곡하던 영신은 문득 칠판을 떼 예배당 담벽에 걸고는 소리친다. “배우고 싶은 자 누구든 다 오시오.” 작품에서 나는 이 장면이 가장 감명 깊었다.

코로나 사태로 제한되었던 학생들의 전면등교가 이번 주부터 확대 실시되고 있다. 아직 거리두기 4단계인 서울과 제주에서도 사실상 전면등교에 가까운 조치가 결정되었다. 나는 교육부의 이번 결정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비대면 강의로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심각할 정도로 저하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할 일이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가정에서 돌보아야 하는 부모들 특히 맞벌이 가정의 고충도 덜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학교가 가장 안전하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그런데 이번 결정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 전면 등교로 크게 늘어난 교사들과 학교 종사자들의 업무 부담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무슨 부담이 늘어나느냐고 반문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 교육 종사자들은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살피느라 훨씬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한 예로 거리두기 때문에 급식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나다 보니 급식 지도의 부담도 두 배가 되었다. 여기에 급식실의 방역과 위생에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졌다. 걱정스러운 일은 바로 과다한 업무부담으로 업무를 계속하지 못하는 교사나 종사자들이 많을 경우에는 우리 교육현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장의 보건의료 담당자들이 총파업을 결의했다가 다행히 정부와 타협안에 합의하고 철회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시국에 일선에서 보건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 파업에 나섰을까?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업무 부담이 도저히 더 버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말로만 이들의 노고를 칭찬하고 입에 발린 감사의 말을 늘어놓을 뿐 인력의 확충이나 의료시설의 건설 같은 기본적인 요구들은 모른 체하고 있다. 정부는 늘 “사태가 진정된 다음에 또 다음에”라고 말하지만, 다음은 오지 않는다. 사태가 진정되면 정부의 높은 분들도 언론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록수의 채영신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로로 쓰러진 나머지 꽃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 작품의 모델이 되었던 분은 실존 인물인 최용신 여사다. 현실의 최용신 여사도 과로로 쓰러져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우리는 저 들에 푸르른 상록수가 늘 푸를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어떤 상록수도 영원히 푸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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