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커피도시다] 130년 전 이미 부산에서는 낯설지 않았던 ‘갑배’ ‘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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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부산항 시대

최근 ‘부산 커피’의 전국적 인기는 한때 유행만은 아니다. 가장 신선한 생두를 접할 수 있는 곳에서 오랜 역사까지 갖춘 저력에서 오늘의 부산 커피가 나왔다고 봐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초량왜관과 부산항을 통해 일반인에게 퍼지기 시작했던 시절부터, 피란시절과 밀다원 시대, 가비방과 마리포사 시대를 거쳐 최근 스페셜티 커피로 전국적 인기를 얻기까지 부산은 오랜 기간 커피 도시 명성을 쌓았다고 항변한다. 신선한 원두의 첫 도착지, 부산 커피 이야기를 5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1892년 부산해관 민건호 기록
1898년 동래부사 연회비 내역 등
부산서 커피 즐겼던 기록들 등장
개항기 이후 일제강점기 때는
끽다점·카페·다방 통해 대중화


■신문물 ‘가배’ 수입 통로, 부산항

최근 1890년대 전후 부산에서 커피가 음용된 기록들이 속속 나오면서 부산에서도 서울 못지않은 커피 향유 문화가 생겨났을 것이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부산해관에 근무하던 민건호가 기록한 1892년 12월 16일 자에는 “호소(戶所)에 양주 3병, 갑배차(甲배茶·커피) 1갑, 영국 담배 1갑을 부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부산세관박물관 이용득 관장은 “민건호는 커피를 아는 이들에게 선물로 부치게 되는데, 아마 영국인 해관장에게 받은 선물을 다시 지인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산세관의 전신 격인 부산해관은 1883년 설립됐는데 해당 기록이 쓰인 시기는 3대 관장인 영국인 조나단 헌트가 재임(1888~1898년)하던 때다.

이 관장은 부산 커피 역사를 더 이전 시기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그는 “그보다 일찍 초량왜관으로 나가사키, 대마도를 거쳐 서구의 설탕이 들어오면서 부산으로 커피가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 공식 문서에서도 커피 기록이 나온다. 국사편찬위원회 통리기무아문 보고서에도 1898년 8월 19일 동래부사 연회비 내역에 ‘가배(커피)차 1통, 한 냥 오전’ 기록이 있다. 로컬문화 연구자 김만석 작가는 “동래부사가 ‘독일 왕이 오니’ ‘외국인 손님이 오니’ 커피를 대접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가배를 요청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1890년대에는 이미 커피 판매가 널리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또 “공식 기록에서는 1860년대 조선에 온 선교사들이 커피를 향유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가톨릭선교사가 만든 1880년의 한불자뎐(한국어-프랑스어사전)과 1897년의 한영자뎐(한국어-영어사전)을 보면 ‘가피’ ‘고피’ 등으로 커피를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제 때도 부산엔 다방, 다방, 다방…

일제강점기 때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으로 끽다점(喫茶店)과 카페, 다방이 등장한다. 끽다점은 일본식 카페 ‘깃사텐’을 한국식으로 표현한 말로 1909년 처음 끽다점이 생겨 이후 카페와 다방이 대중화됐다. 1918년 조선총독부 관보를 보면 일제가 영국령 인도 가배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조선에는 일본을 통한 브라질 커피가 들어왔는데, 부산항을 통해 커피가 다량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커피 인문학자 이길상이 최근 발간한 책 에 따르면 1925년 5월 24일 자 일본어 신문이었던 (1946년 창간한 현 와 다른 신문) 광고에 ‘카페 런던’이 시설을 확장하고 여급 미인 12명을 두고 영업을 재개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1927년 10월 10일 자 보도에도 부산에는 이미 50여 개의 정식 카페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부산박물관 사료에도 이 시기 부산 다방 문화 자료가 있다. ‘부산역전’(부산역 앞)에 있는 ‘다리야’라고 적혀 있는 성냥갑이다. 부산박물관 박미욱 유물관리팀장은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당시 다방이 성냥갑을 통해 홍보했던 일이 일상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가 발굴한 다이쇼 11년(1922년) 작성된 ‘부산항 경제통계요람’에서도 일제강점기 커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기록에는 커피가 ‘커피 코코아 초콜렛류’로 분류돼 수입된 양과 가격을 기록한 자료가 나온다. 1925년 11월 20일 자 에도 ‘홍차, 커피류 조선에 수입되는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커피는 홍차, 우롱차, 코코아 등 다양한 차류와 함께 수입됐고 식민지 조선인도 즐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현정·조영미 기자 yourfoot@busan.com
부산항 개항 이후 부산은 ‘신선한 원두’의 첫 도착지이자 커피를 향유하던 도시였다. 1925년 11월 20일자 일제강점기 부산일보 신문기사(왼쪽 위)와 일제강점기 부산역 앞 다방 홍보 성냥갑(왼쪽 아래). 그리고 부산의 커피 관련 기록이 속속 나오던 무렵인 1895년 부산해관부두 모습.(오른쪽 큰 사진) 국립중앙도서관·부산박물관·부산세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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